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돈이 얼마나 있고 학벌이 얼마나 좋든, 또 지위가 얼마나 높든 상관없이 모두 ‘특별한’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기때문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또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려는 결심을 내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영(靈)”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줄 때마다 우리 안에 새롭게 하느님의 영께서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또 하느님의 영의 뜻에 따라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자 기쁨을 선사해 주고, 삶의 여러 가지 역경이 우리 안에 심어놓은 상처들을 치유해주는 참 ‘평화가 우리와 함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특별한 사람인 것은 용서가 주는 참 평화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 누구를 용서해 주고 사랑해 줘야할까요? 우리와 평소에 상관이 없는 사람들, 아주 먼 과거에 살았거나 거리상 우리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을 용서하기란 비교적 쉽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한테 우리가 직접적으로 받은 상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매일 만나고 매일 다투고 매일 말을 섞는 사람들의 경우는 용서하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 번 용서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백 번씩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용서해줄 능력이 없다고 절망하면서 우리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우리는 성령께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라고 말씀하신 취지는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적인 능력에만 의지해서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는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6). 감정적으로는 용서한 것 같이 느껴지지 않고 미움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것 같아도 성령께 의지하면서 기도 중에 용서를 할 때 그 용서는 ‘완전’한 용서가 됩니다.
비록 새롭게 용서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 아쉽게도 무척 빨리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끝으로, 문득 오늘 제가 접하게 된 다음의 말씀이 저의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친밀감이 강한 그만큼 우리는 교회를 활성화시켜주시는 성령과도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정도가 큰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크게 사랑합니다’(샤를르 드푸코).
성령을 모시고 사는 이들이 모인 곳이면 바로 그곳이 교회입니다.
부족해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면 바로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커집니다.

신희준 루도비코 신부 / 사제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