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우리 인간들이 사는 지상으로 파견하셨습니다. 아드님이 부여받은 사명은 인간들의 죄를 모두 사해주고 구원하기위해 그들을 대신해서 파스카 축제 때 바쳐지는 어린양처럼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때’가 다가오자 아드님께서는 긴 여정(루카9,51 ~19,27 참조)을 마치고 제자들의 환호를 받으며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혁명을 일으켜 강력한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리라는 제자들의 장밋빛 희망과는 달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내쫓으시고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 제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다처럼 적극적으로 처신하기로 마음먹은 제자는 예수님을 제거할 방법을 찾던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제거할 기회를 노리는 이들의 증오에찬 시선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면서도 자신들의 기대에 예수님께서 과연 부응해주실 수 있을까 하는
제자들의 불안에 찬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또박또박 자기 길, 곧‘수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오로께
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예수님의 확신에 찬 모습과 제자들의 흔들리는 불신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사실 수난의 길을 예수님이라고 마냥 기쁘게 걸어가지는 않으셨습니다. 겟세마니 동
산에서 바친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와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진 예수님의 땀은 예수님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대변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까지 흔
들림 없이 충실하게 자신의 수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 남기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십자가는 위대한 책입니다. 그 책에서 저는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최상의 지혜를 담고 있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이 위대한 책을 척도로 삼아 세상의 일들과 지식들을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십자가는 우리가 보통 희망하는 유쾌하고 유복한 생활과 정반대의 삶을 상징합니다. 돈이 많고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자기 삶의 척도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돈과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기를 십자가는 요구할 테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우리 심정일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유일한 문입니다. 동시에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주간 동안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을 따라 걷지 않으시겠습니까?

신희준 루도비코 신부 / 사제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