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 약간은 멍하니 생각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사람, 묵주기 도를 바치는 사람 등을 자주 보았습니다. 요즘의 지하철 풍 경은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정도로 한 가지 모습입니다. 열 명 중에 여덟이나 아홉은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지하철 안에서만이 아니라 거리에서도 스마트폰삼매경에 빠져 걷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스마트폰 에 단단히 매여 사는 것이 아닐까,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마트폰에 열중하듯이 성경과 신심서 적, 기도에도 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 봤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주님께 대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커야겠지요. 관심과 마음이 가는 곳에 눈이 가게 마련이니 까요.

 

노예가 되려면 스마트폰이 아니라 주님의노예가 되면 좋겠습니다. 바꿔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과 마음을 집중하여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는 충직한 주님의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의미가 아닐까요? 누군가를 진정 왕으로 고백한다면 그분께 온 마음을 다해 충성을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신이 섬기는 왕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압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는만물 가운데에 서 으뜸으로서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뭅니다.(2 독서)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면 유유자적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무관심하기 쉽지만, 그리스도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영도자요 목자로 서 성실하게 백성을 보살폈듯이(1독서), 그리스도는 교회 의 머리로서 우리 구원을 위해 노심초사하신 끝에 십자가 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신 분입니다.(2독서) 십자가상에서 는 유다인 지도자들의 빈정거림과 군사들의 조롱을 묵묵히 참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죄인에 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복음)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세속의 권력자들처럼 완력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며 세도를 부리는 분이 아닙니다. 충만 한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큰 인내로 우리의 거칠 음을 견뎌주시며, 한없는 자비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축일이 흔쾌히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왕 이신 그리스도님! 당신을 닮아 사랑과 인내, 자비로 이웃과 세상을 대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