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은 30세 되던 날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한 나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에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 헌신적으로 일하여 세상에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어떤 기자가 그녀에게 “당신의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신 소명에 따라 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광야에서 낙타 털옷과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벌꿀만을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대대적인 세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곧 다가올 하느님 나라와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세례운동이 군중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많은 추종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메시아이길 바랐고, 또 그렇게 기대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과 곧 오실 분, 곧 주님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진정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생활과 나의 음성만을 듣는 생활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마음의 선택에서 한 발자국 전진하여 몸으로 하는 선택, 즉 나의 생활을 방향 짓는 결단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나의 이름을 불러 개인적으로 맡겨 주신 하느님의 목적을 자각하는 데서 더욱 구체적이며 가치 있게 발전됩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과 나이팅케일의 삶처럼….

고준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