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연중 제16주일 1독서(예레 23,1-6) 2독서 (에페 2,13-18) 복음 (마르 6,30-34)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힘은
착한 목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굳센 믿음’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7-22 [제3104호, 15면]

윌리엄 다이스의 ‘착한 목자’.
주님의 파스카를 경축하는 교회는 연중 제16주일을 맞아 지존의 영원하신 자애에 감사드리고 참 목자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체 안에 살아계시는 성자께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돌봐주시는 목자시기에 우리의 기쁨이요 평화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예레 23,1-6)에 나오는 예레미아 예언자는 바빌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지도자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참된 목자를 세워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게 고향으로 데려오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파스카의 신비로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해주신 하느님께서 바빌론 유배 이후 새로운 탈출을 알리십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난 왕은 공정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고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에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선포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편)는 오늘의 화답송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일찍부터 양이나 염소를 기르며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이 시편은 유목민의 삶에서 체험한 목자와 양떼 사이의 깊은 신뢰와 친교를 노래한 신앙고백입니다.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는 생명의 터전이요 평화의 쉼터입니다. 목자는 양떼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돌봐주기에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더 잘 드러납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이 없나이다.” 험한 산길, 불의의 재난,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 골짜기에서도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전능에 대한 확신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마르 5,34)는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신뢰에 찬 믿음은 인생을 바꿉니다.

양떼는 목자의 막대와 지팡이만 바라봐도 위안이 됩니다.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환대를 해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친히 바르는 은총 속에 품위를 돋우시며, 좋은 포도주로 술잔을 채워주시는 진실하신 우정에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의 집에 한평생 살면서 당신의 자애와 은총을 누리는 것은 양떼의 소망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편을 쓴 시인은 하느님을 목자로 자신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이 시편이 나의 고백이요 기도가 되려면 자신도 한 마리 양이 되어 목자인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성실히 돌보고 양은 목자를 전적으로 따릅니다. 자신이 의심 없이 하느님을 신뢰하고 친교 속에 일치를 이룰 때 믿음은 굳건해지고 삶의 기쁨은 충만합니다.

제2독서(에페 2,13-18)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기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그들 사이에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주님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마르 6,30-34)은 전교여행에서 돌아온 열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유하느라 무척 지쳤으리라 짐작됩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제대로 먹을 틈조차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패스트푸드나 간식을 애용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허기를 달래는 것보다 성찬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떠나갑니다. 외딴 곳은 사람이 살지 않거나 인적이 드문 곳, 때론 광야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당시 팔레스티나에 살던 대부분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외딴 곳으로 떠나간 것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고요 속에 삶의 여유를 찾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들이 모인 이 외딴 곳은 기도와 가르침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거니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본 군중들은 육로로 함께 달려가 먼저 외딴 곳에 도착합니다.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은 목자가 없는 양떼와 같은 군중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이며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양들에게 목자가 없다면 그들의 본성에 비추어 소심하기에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어리석기에 군중심리에 휩싸이기 쉬우며, 방향감각을 잃어 헤매거나 분열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4)라고 정체성을 밝히셨습니다. 주님은 목자시기에 양들을 만족하게 먹이고, 보살피고, 안전하게 돌보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잘 알고 있고 양들도 자기 목자를 잘 압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뒤를 따릅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면서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찾아 외딴 곳으로 가는 군중들의 열정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삶의 고통을 호소한다면 참 제자가 못 됩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힘은 굳센 믿음입니다.

말씀과 생명의 빵으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착한 목자’가 늘 함께하심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형제들에 대한 연민은 바로 사랑의 성심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형제애로 친교를 이루는 삶이 참 행복이요 평화임을 마음에 새기는 한 주가 되길 기원합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