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강론(안동교구)


      [5월 20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일치의 성령


          *글:  영덕 본당 함원식 이사야 신부

성령 강림은 교회의 기둥인 열두 사도가 새로 구성된 직후 일어나는데, 이를 기점으로 교회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작됩니다. 이때는 오순절이었는데, 이는 유다인의 3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파스카가 지나고 오십 일째 되는 날로서, 

본래 밀 수확을 끝내고 하느님께 맏물을 바치는 추수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경축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16 16절은 이 축제에 모든 유다인 남성이 예루살렘 순례를 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가 되면 

지중해 인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많은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세기 예루살렘 주민의 수는 

10만 명 정도인데, 이 축제 기간에는 100만 명 이상의 유다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숙소가 모자라 인근에 천막을 치고 

머물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필 이렇게 가장 많은 유다인이 모이는 때와 장소에서 성령 강림이 일어난 것은 이 사건에 유다교와 관련된 어떤 의미가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오늘 1독서인 사도행전의 말씀은 오순절이 되었을 때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어떤 기간이 완전히 지났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것은 이제 율법에 따라 다스려지던 옛 시대가 완전히 지나고 성령께서 다스리시는 새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시는데,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오십니다. 사도들은 거센 바람 소리를 

들었고, 불꽃 모양의 혀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심으로써 성령께서는 당신을 

부정할 수 없는 실재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심약한 인간들의 상상의 소산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바람과 불은 하느님 현존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폭풍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셨으며( 38,1), 

모세에게는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2-5)와 시나이산의 불 속에서 나타나셨습니다(탈출 19,18). 이렇게 볼 때, 

성령께서 불과 바람으로 나타나신 것은 당신이 삼위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성령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사도들이 보여줍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여러 언어로 

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로 보아야 합니다. 방언은 특별한 해석이 필요하지만, 사도들의 

말은 사람들이 바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민족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성령 하느님 안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성령 하느님의 

강림은 바벨탑을 세울 때 깨진 언어의 통일성을 복구하면서 동시에 교회가 수행하게 될 사명의 보편적 차원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느님께 대한 교만의 죄로 깨어진 인류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회복될 것도 알려줍니다.


주목할 점은 사도들이 바벨탑 이전 사람들처럼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소통이 됩니다. 이것은 성령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전체주의적인 획일이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전체주의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대항하고 인류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오직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만이 인류가 함께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치의 성령 하느님 안에 모인 사람들의 출신 지역 15개의 목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먼저 동쪽 지방부터 서쪽 지방을, 다음에 북쪽 지방부터 

남쪽 지방을 배열하고 있습니다. 이 목록의 배열은 마치 복음의 붓으로 세상이라는 도화지를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그 끝까지 색을 칠해가는 과정을 보는 듯합니다. 성령 하느님께서 교회와 함께 완성하고자 미리 보여주신 

이 아름다운 그림은 역사 안에서 아직도 그려지는 중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