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하느님의 희망은 사람입니다

대림 제1주일
제1독서(예레 33ㅡ14-16) 제2독서(1테살 3,12-4,2) 복음(루카 21,25-28,34-36)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12-02 [제3122호, 15면]

우리 부산교구에서는 지난 한 해를 믿음의 해로 선포하여 교구민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해를 희망의 해로 정하여 모든 교구민께서 희망을 살아가도록 독려하려 합니다. 건강한 믿음에 희망이 더하여질 때,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리따운 사랑의 믿음인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 은총에 의탁하는 단단한 믿음으로 탄탄한 희망을 살아갈 때에 마침내 튼튼한 사랑의 용사로 거듭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맞는 마음이 무척 설렙니다. 주님의 말씀에 조준하여 스스로의 삶을 점검하며 지낼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져서 “더욱더 그렇게” 희망을 잃지 않으시길 기도하게 됩니다.

희망이라는 화두가 마음을 맴돌던 어느 날,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주님을 향하는 믿음과 희망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변화될 것을 끝까지 믿으며 희망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순간 온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실망스러운 세상일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믿으시니,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볼 여지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진리는 매일매일 우주를 운영하시는 주님의 손길에서 드러나며, 이날 이때까지 이 한심한 세상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확실히 증거하고 있으니까요.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 무궁히 인간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실 테니, 얼마나 벅찬 은혜인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온전히 당신만을 향해 집중할 수 있도록, 성탄을 선물해주셨습니다. 해마다 당신의 아들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시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로 세상에 선물해 주십니다. 때문에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문제점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심각한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수학공식처럼 배우려 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를 마치 ‘몇 번’을 바쳤는지 수를 헤는 것으로 만족하고 ‘며칠’을 봉헌했으니 할 만큼 한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기도는 한마디로 주님께서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서 열어 놓으신 천국의 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내 삶에서 주님을 제일 첫 자리에 모시겠다는 결단입니다. 내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긴다는 위임장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하면 할수록 내용이 변화됩니다. 기도의 방법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의 본질이신 주님의 성심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는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마침내 좋으신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완벽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삶의 현장인 세상은 말 많고 탈도 많아 주님의 뜻에 미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언제나 죄가 만연하여 매일 죄에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세상은 사탄의 자식들과도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팍팍한 곳입니다.

사탄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우리 안에 쑤셔 넣는 일에 능란하기에 그렇습니다. 평화를 거부하도록 유인하며 마음에 분을 채워 비판하도록 이끌어가기에 그렇습니다. 마침내 핏대를 세우도록 부추겨서 손에 돌멩이를 쥐여주기까지 하니 그렇습니다. 사소한 일에서 ‘약자’를 무시하게 만들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정의인 듯 포장하여 우리를 속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바른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쫓아가도록,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빠져드는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도록 유혹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믿음에 ‘부도’를 내도록 재촉하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2베드 2장 참조)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결코 사탄의 농간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수월치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훨씬 영리하며 교활합니다. 꼭 법을 위반하는 범죄가 아닐지라도 세상의 이 꼴 저 꼴 아닌 꼴들에 마음이 성가시고 뒤숭숭해지는 일마저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상대의 허물에 분노하고 비방하며 치가 떨린다면 하느님과 상관없이 지낸 증거임을 깨닫고 단호히 돌아서야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참회로 죄의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이를 역겨워하는 존재입니다. 죄의 악취를 못 견디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거듭 같은 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설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에도 더 좋은 주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희망하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 다시 예수님이 오십니다. 우리는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더 사랑해드리기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날 그때에 모두 “사람의 아들 앞에 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여 늘 깨어 살아가는 삶에 기준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독서가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두렵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당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입니다. 무시무시하게 읽힌다고 성경의 예언을 묵살하지 않도록 합시다.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복한 구절에만 집중하여 밑줄을 긋고 암송하며 삶 안에서 그 말씀만 적용되기를 바라지 않도록 합시다. 내 입맛에 맞고 달고 단 성경 구절만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합시다. 만약에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주님을 내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려는 나쁜 심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회개의 사람을 “흠 없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회개는 결코 그분께 내 죄를 나열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일이 아니며 내 죄악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들고 괴로워하는 자학이 아닙니다. 회개는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여 그분의 순수를 만나는 삶이며 그분 사랑의 방식을 영혼에 새겨 고정시키는 일이기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회개하여 변화된 새 사람에게는 결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선물해주셨습니다. 교회의 간절한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일상의 근심으로”부터 탈출하도록 다독여 주시고 그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힘”까지 주고 계시니, 든든합니다!

당신께서는 태초부터 이제까지 사람을 향한 희망을 저버린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께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줄 희망의 주인공입니다. 이 자부심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더 사랑해드리도록 합시다. 세상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주신 그분의 뜻을 높이 기리는 대림 시기, 마음과 마음들이 그분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거룩한 삶을 꾸려 가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