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그리스도는 행복의 스승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이사 50,5-9ㄴ (제2독서) 야고 2,14-18 (복음) 마르 8,27-35

십자가는 세상에서 지고 가야 할 고통과 수난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십자가의 길 따르길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9-16 [제3112호, 15면]

연중 제24주일에 주님 제단에 모인 우리는 말씀의 식탁에서 주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와 우정과 친교를 나누시는 그분의 정체성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행복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 50,5-9)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올곧은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사명을 거부하지 않고, 매질과 모욕까지도 감수한다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의로우신 주님께서 도와주시기에 부끄러움이 있을 리 없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애원을 들어주시고 생명을 지켜주시니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화답송, 시편 116,1-9)고 찬미합니다. 죽음의 올가미와 저승의 공포가 덮쳐 고난과 근심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어린 양들을 구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눈물을 거두시고, 발걸음조차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시니 새 생기를 얻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 2,17)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가 주님의 새 계명인 사랑을 말로서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성과 자유의지로 성실한 애덕의 실천이 교회의 사명에 밑거름이 됩니다.

복음 말씀의 묵상에 앞서 명예를 핵심가치로 여기는 지중해 문화를 소개합니다. 개인주의가 바탕인 서구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능력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출생으로 명예를 얻는 중동지역 사람들에게는 ‘가족 우선’과 ‘가족 연대’가 소중하기에 한 가문의 연대기(족보)는 가보입니다. 그러기에 불효자의 경우는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신명 21,18-21)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마르 8,27-30)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마르 6,3)로 여깁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남의 말만 들은 외부 사람들과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기대와 생각을 알아보는 것은 명예를 지키고 사목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외부인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예언자 가운데 한 분으로’ 여긴다고 제자들이 전합니다. 이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한 내부 비밀을 철저히 지키도록 당부하십니다.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오늘의 우리에게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분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십자가의 길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반대파에게 당할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마르 8,31-32) 으뜸 제자인 베드로가 인간적 생각에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예수님은 돌아서서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불러 당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조건인 이 구절은 공관복음(마태 16,24; 마르 8,34; 루카 9,23)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제 삶을 크게 변화시킨 말씀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세상 속에서 지고 가야 할 고통과 수난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자신을 버리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질 않습니다. 이 말은 하느님이냐 세속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라는 뜻은 아니고, 자기중심적인 세속의 삶을 벗어나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겸손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 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고, 성모님은 ‘주님의 종’이라 응답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작은 꽃’,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는 ‘하느님의 손에 몽당연필’,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 김 추기경은 ‘남의 밥’, 최민순 신부는 ‘두메 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저는 ‘단 샘의 두레박’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르 8,3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좁은 길이기에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고 고백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은 행복의 스승이십니다. 나약한 인간이라 유혹에 걸려 숱하게 넘어지면서 깨달은 바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나 중심의 삶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요 ‘영혼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있고, 자비와 용서가 있으며, 지혜와 용기가 있기에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랑의 실천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