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제1481호), 2018년 9월9일발행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3주일 (마르7,31-37)   에파타(열려라)!


*글:    조명연 신부 /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신부들과의 모임에서 한 신부가 잘난체하는 신자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자는 기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교회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자주 말한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신부의 본당 사목에도 

자주 관여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듣다 보니 그 신자만 봐도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잘난체하는 신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면서 신부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신부들 대부분 “그냥 무시하라”고 

조언했는데, 한 선배 신부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신자는 잘난체하는 게 아니라 잘난 거야.”

맞습니다. 이렇게 인정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잘난체한다고, 밉다고, 화를 내면 결국 자기 손해일 뿐이지요. 

잘난체한다면 그냥 ‘잘났다’고 인정해 주면 해결됩니다. 그걸 인정하지 못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일어나 

관계도 회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워서는 과연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기준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만이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소통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을 통해서만 관계가 회복되며,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셨지요.(마르 7,33-34 참조) 

사실 예수님께서는 치유 기적을 자주 행하셨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당신의 말씀 한마디에 병든 이가 

치유된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대며 치유의 은총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치유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복잡한 방법을 쓰십니다. 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사람들과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통하려면 들려야 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단순히 이 한 사람만 치유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신 건 아닐 겁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치유의 기적은 다 뜻이 있었지요. 하느님의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 믿음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주님께서는 놀라운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오늘의 기적 역시 커다란 가르침을 주십니다. 즉, 주님을 통해서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제1독서에 나오듯, 구원의 하느님이 오실 때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이사 35,5)는 

말씀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야고 2,5)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열어주신 귀, 주님께서 풀어주신 혀를 통해 세상 안에서 

주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만 내세우다 보면, 귀를 막고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혀가 굳어져서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에파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진정으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이제는 우리의 몸으로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 커다란 

기쁨을 드리는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