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인간을 빈손으로 세상에 보낸 이유는 누구나 사랑 하나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고, 하느님이 인간을 빈손으로 저 세상으로 데려 가는 까닭은 한평생 얻어낸 그 많은 것 중에
천국으로 가지고 갈만한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명주실
같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타고 마음 한가득 비추는 계절입니다.
어릴 적 동네 냇가에서 뛰어놀 때는 작은 그물 하나면 충분했고 뒷동산을 오를 때면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했습니다. 어릴 때는 세상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비해 불과 몇십 센티의 키가 자랐을 뿐인데 필요로 하는 것들은 수천 배, 수만 배로 늘어난 느낌입니다. 욕심
보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반대로 욕심 보를 줄여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먼 훗날 욕심 보
때문에 천국 계단을 오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지나 않을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도
세상 잔치에 골몰하느라 천상 초대장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유합니다. 임금은 손님들을 기다리지만
초대된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고 보낸 종들마저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실망한 임금은
초대된 이들 대신 다른 이들로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깁니다. 초대된 이들은 이스라엘을, 보내진 종들은
예언자들을 뜻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마지막 초대장을 발송하며, 이제 그 초대장이 이교
백성을 향해 날아갈 것임을 경고합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하느님은 오늘도 초대장 발송에 정신이
없습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수취인이 달라졌다는 점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초대장을 받아든
신앙인들 역시 2천년 전 이스라엘 백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싶습니다.
오늘도 천상 잔치보다 지상 잔치에 골몰하는 우리는 하느님 말씀보다 동네 아파트값 오르내림에 희비가
교차하고 미사와 기도 시간은 아껴도 건강을 위해 몇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은 마다하지 않으며 천상 양식인
성체 모시는 것은 주저해도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보약과 비싼 건강보조식품은 꼭 챙깁니다. 노년을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저축되어 있어야 하고 연금이나 건강보험 몇 개는 들어놓아야 안전하다고 믿는 모습 속에 천상
초대장은 기쁨이 아닌 빚 독촉장처럼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초대받았지만 방 한 곁에 던져진 초대장은 갈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마음만 심란하게 할 뿐, 예복조차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하느님이 가을을 아름다운
붉은단청으로 채색하신 까닭은 우리의 마지막도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듯, 이제는 천상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욕심 보 늘리기가 아닌 욕심 보 줄이기에 조금 더 열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의 가을에는 그래서 삶의 리모델링이 참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합니다.
권철호 다니엘 신부┃삼각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