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나 모아진 봉우리로 말을 걸어오고 초록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대지를 서서히 물 들여 갑니다. 봄은 그렇게 우리 마음에 꽃씨를 뿌리고 연초록의 붓질로 밑그림을 그려가지만
마음의 캠퍼스 한 곁에서 솟구치는 애잔함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연초록의 붓질도 봄의 토양 속에 자리한 뭇 생명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일겁니다.
봄은 그렇게 생명이란 단지 살아 숨 쉬는 이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의 손길 위에 놓여
져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아마도 사순절이 영원의 캠퍼스에 그려지는 영혼의 붓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사랑하시던 나자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죽은 나자로의 부활이 단순한 기적으로
만 다가오지 않음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예수님의 눈물과 더불어 나자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인간에게 죽음은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영원한 박탈이며 동시에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의 영원한 상실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앞에서는 영원한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더욱이 사랑하는 이들 마음속에서는 영원한 단절이란 있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나자로의 부활입니다.
우리 신앙이 성인들의 통공을 말하고 하늘과 땅, 죽은 이와 산 이의 통교를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이들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생명인 것처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느님의 바다에 담겨질 때, 우리 사랑의 원천적인 기회 박탈은 없으리라는 믿음이 우리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밀물이든 썰물이든 바닷속에 머무는 한, 물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생이든 죽음이든 하느
님의 손길 위에 자리하는 한 영원한 생명의 바다에 자리합니다. 해서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것은 하느님을 멀리하고 그분을 떠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참 신앙이고 참된 믿음이기도 합니다.

연초록의 붓질로도 다 지울 수 없는 뭇 생명의 흔적 처럼 죽음조차 영원히 묻어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를 향
한 당신의 사랑임을 알기에, 오늘도 우리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캠퍼스에 그려지는 영혼의 붓질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물감이 되어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이지만 아름답게 채색되어지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절실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는 말처럼 간절함으로 두
손끝이 모아지는 사순절입니다.
권철호 다니엘 신부/삼각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