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하면 몇몇 독실한 분들께 반감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주저 않고 곧 바로 반발하겠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선 죄인들을 위해 특별함을 가지고 있으심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지난 주의 복음 말씀과 (루카 15:1-3. 11-32 되찾은 아들의 비유) 금주의 복음말씀에서도 (요한 8:1-11) 명확히 들어납니다. 예수님께선 간음을 저지른 여자와 만나게 되십니다. (남자는 어찌 되었을까요?) 당연히 그 여자를 나무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선 그리 하시지 않으셨고, 여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 중 죄가 없는 이부터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명하십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땅에 무언가를 적으셨다고 합니다. 무엇을 적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십계명이나, 혹은 가혹하게도, 주변에 모인 개인들의 죄를 낱낱이 적으셨다고 추측됩니다. 그 곳에 모였던 군중은 여인을 버리고 사라졌고,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고 명하셨습니다.
되찾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간음하다 걸린 그 여인도 예수님께 용서를 받고 더욱 나은 사람이 되도록 격려를 받습니다. 이 두 이야기만 보더라도 하느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죄인이라 사랑한것이 안이라, 모두가 그 분의 창조물이며 그 분의 아들 딸이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항상 최선의 일만이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분께선 우리 모두가 죄에 물들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그 분께 다가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의 창조물임에 그 분께선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지 알고 계시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얼마나 인내 있고, 자비로우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선 우리가 우리 죄를 뉘우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죄를 뉘우치지 않고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은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친다면, 제 1독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다면 바오로 성인이 겪은 일에 우리도 동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 있고 스스로가 죄인이 아니라 믿고 있는 사람들 또한,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후에 받게 될 상 또한 굉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해 왔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곧 너의 것이다.” 바오로 성인처럼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받을 상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뛰어 가야 합니다.

FR.EMMANUEL AGUIY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