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와 건강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 하는 무화과 나무를 접하게 됩니다. 여러 상징, 비유, 그리고 부호가 있기에 우리는 성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고등학교 교과서나 대학 전공서적 같이 표면상만의 의미를 배우고, 마치 어느  규칙을 따르듯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시고 우리가 참된 삶을 어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서의 여러 가르침 중 일부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어딘가에 걸어가던 와중에 불에 타고 있는 관목을 목격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근래에 있었던 빅토리아주 산불처럼 우리는 산불의 여러 문제와 위험성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들은 호기심때문에 산불구경을 하려고 가까이 가서 보려 할 것입니다, 모세가 그런것 처럼. 하지만 불길에 휩싸여 있음에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면 얼마나 신기해 하겠습니까?
만약 하느님의 계시와 같은 것 없다면, 우린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가 모세가 겪은 이야기를 접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 중 일부는 비록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대화를 걸어 오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일곱가지 성사, 혹은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존재를 들어내 보이신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편안하겠습니까? 만약 그 분이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 세계의 그릇됨?, 탄압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구원이 필요한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실까요?,그리스도께서 현재하시고 계신다면, 그 분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고 계시겠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사순기간 동안 고민하기에 훌륭한 질문들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당연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옳은 행동을 함은 물론, 우리 행동 하나 하나에 하느님의 사랑이 내뿜어 나와야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심을 그 행동들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행동없는 신앙은, 곧 죽은 신앙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에서도 같은 교훈을 주십니다. 누구든 자신이 굳게 서있다 믿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겁을 먹거나 항상 가책을 느끼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신앙의 힘, 그리고 신앙에서 우러러나오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도전 과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 레오에 의하면 사순시기는 속세의 때를 베껴내는 것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갈망하는 우리 마음을 되새겨 보는 시기입니다.
이번 사순시기간 주님의 뜻을 받드는 선택을 하고 이 세상의 여러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랍니다.

FR. JAMES O"DONOGH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