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도회에 들어와 살아온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러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과 신중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새로운 것도 없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던 수사님들도 그냥 다 허물 많은 인간으로 보일 뿐입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서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수도원에서 피정 강의할 때가 참 힘듭니다. 저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제 삶을 훤히 다 아는 수사님들께 훈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실망하고 그로 인해 더불어 살아가는 형제를 하찮게 여길 때도 있어 부끄럽습니
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하고 잘 맞지 않는 형제,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형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를 아주 좋아하고 칭찬을 합니다.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칭찬할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은 그 형제를 칭찬하고 좋아하니 참으로 희한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저는 그 형제를 잘 알지 못하나 봅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 형제의 참모습을 볼 눈이 없어 편견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탄복하면서도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께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도 그저 좋은 말이라고 여길 뿐, 그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분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인성만 볼 수 있었지 그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완전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으로 알아보지 못한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볼 눈이 없고 깨달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는 그들에게 기적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겠지요. 예수님 이전에도 예언자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미워하시거나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럴만한 믿음과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 내가 늘 보아왔고 인간적인 면에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는 내 가족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안에서 존경과 사랑과 일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가까이 있는 사람들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보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나누어주신 그분의 선물,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오늘은 내가 그토록 이해하지 못하고 하찮게 여겨왔던 사람들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 / 성바오로수도회 준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