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한창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때, 가끔 음식을 보내준 어느 자매님의 남편이 암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매 미사 때 기도를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빨리 쾌차하시어, 가정과 교회에 봉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나중에 들었는데 한국에서 본당 신자들이 구역별로 반에서 그 형제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은 구역장으로 열심히 본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저는 그분을 위해서 용기를 내시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형제님이 있던 곳이 암 병동이었기에 제 편지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용기가 되었는지 복사해서 바로 옆에 있는 환자도 읽어보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끊임없는 기도와 저의 바람이 보태어져서 그 형제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루카 18,5)라고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끊임없이 주님께 조르면, 무엇이든 들어주신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과부는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 체험을 강하게 한 사람으로서 완전히 하느님께 돌아선 사람, 즉 회개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부와 같은 회개한 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이고, 그분의 의지대로 사는 신앙인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현실의 힘겨움도 좋지 않은 일도 하느님께서 다른 의도로 섭리하시는 것으로 읽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대다수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하느님께 원망하고, 심지어는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을 귀찮게 한다고 우리 입맛에 맞게 만 주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밤낮으로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청하는 과부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는지 신앙생활을 살펴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청하는 시간과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시간을 따져볼 때, 밤낮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스승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밤낮으로 기도하시고, 설사 당신의 뜻이 다르더라도 아버지 뜻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밤낮으로 부르짖는 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하느님께 초점을 맞춘다면, 나의 것보다 하느님 것을 실현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인 신앙인들은 하느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이고, 밤낮으로 청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밤낮으로 청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하소연도 들으시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시며, 우리의 삶을 보살피십니다.
과부처럼 그토록 귀찮게 하는 사람의 소원 들어주시지 않는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양해룡 사도요한 신부/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