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서간 중 3편의 서간, 즉 티모테오 전후서와 티토서는 18세기부터 “사목서간(Pastoral Epistles)”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대부분의 바오로 서간이 특정 공동체를 향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목서간은 티모테오와 티토라는 인물에게 보내진 서간들입니다.
하지만 그 서간의 내용으로 볼 때에 3편의 사목서간은 개인에게 보내진 사사로운 편지라기보다는 바오로가 지역공동체의 지도자였던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내는 공적권고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서간들을 통해 바오로는 교회의 제도와 조직, 잘못된 가르침 등에 관한 사목신학적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자신의 안수를 통해 티모테오가 받은 영은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임을 말합니다. 여기서 바오로가 비겁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바오로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실과 그렇게 갇혀 있는 바오로와의 관계를 티모테오가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음을 바오로는 재차 명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고합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바오로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를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참으로 신앙하기에 편한 세월을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박해의 공포나 감옥에 갈 두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주일이면 성당을 찾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나 교회와 세상의 대조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문명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세상 안에서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의 경외와 겸손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물질주의의 소비사회 안에서 가난과 절제에 대해 묵상해야 하며, 자신만을 생각하라는 세상의 이기주의 앞에서 나눔과 섬김의 가치에 대해 역설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바오로의 시대와 우리의 세상 사이에서 참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감옥 같은 현실은 별반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단단한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감옥처럼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한가운데서 죄인처럼 살고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오로는 역시 성령을 통한 “믿음과 사랑”으로 부끄럼 없이 살아가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오늘의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조금 다른 어조로 바오로가 말하는 신앙의 긍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모든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돌무화과나무에게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해도 복종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은 같은 말씀을 전하며 아예 나무들이 자라는 “산을 (통째로!) 옮기는 믿음”의 위대한 능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영 안에서 살아갈 때 세상은 분명히 변할 것이라고, 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생생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수고로운 삶을 통해 세상 안에서 작은 변화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오늘의 복음의 말미에서 예수님은 역시 잊지 않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희는저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멘.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