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 수사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미국 남서쪽의 어느 사막 한가운데 있는 수도원에 살면서 진정한 수도승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디비디(DVD) 하나를 주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가 살고 있는 사막 수도원의 전경과 하루 일과,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수도승들의 모습 등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저런 곳이 있구나!’ 저는 감탄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고독한 모습속에 기도와 노동으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수도원의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세상과 스스로 격리된 삶, 고독과 적막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수도승 삶은 현재 우리의 생활과는 꽤 다른 삶이었습니다. 그 후 일 년 정도가 흐른 뒤, 그에게서 메일 한통이 전해 왔습니다. 사막 체험 3년을 마치면서 사막은 공간적이고 지리적 사막이 아니라, 마음의 사막이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 수도원으로 와서, 또 다른 사막에서의 삶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은 얼마든지 고독하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마음의 사막에서 주님께 바치는 기도는 참으로 절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도 역시 당시 박해라는 고독과 고난의 사막체험을 뼈저리게 했습
니다. 그들은 박해하는 자를 피해, 산골짜기에서 옹기를 구워 생기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묵묵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라는 사막에서 그것을 피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막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서슬 퍼런 칼날 속에서도 순교자들은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친척들을 입교권면하고, 나아가 촌락을선교하여 ‘교우촌’을 형성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자녀들에게 구전으로 “성경직해”, “천주가사”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굳건한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박해라는 사막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도승처럼 사막 속에서 살면서 고독을 인내하며 하느님
을 찬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 수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사막”이 오늘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박해입니다. 세상살이 속에서 체험되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아픔 등은 우리의 사막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박해시기에 그것을 피하지 않고, 신앙 전파에 온 힘을 쏟으신 순교자들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고독과 아픔이라는 사막 속에서 우리는 더욱 하느님을 찬미하고 더욱 열심히 전교하여, 우리 신앙을 빛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사막에서도, 박해라는 사막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만 체험되고 아파하는 사막이 아니라, 나를 위안하고 보호하는 수도승들의 공동체가 있었고, 같은 신앙을 나누었던 선조들의 신앙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막에서 주님께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현대의 사막에서 나 혼자 느끼는 적막감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와 함께 그 사막속에서 주님을 체험하고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공동체 속에서 주님을 믿
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양해룡 사도요한 신부/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