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리시간에 ‘가톨릭(Catholic)’이란 말을 신앙고백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서 ‘보편되며’가 바로 ‘가톨릭’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중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될 때 라틴말 하느님(Deus)을 ‘천주’(天主, 천상천하의 주인, 하늘의 주인)’로 번역했고, 자연스럽게 그 서양 종교를 그리스도(Christus)교의 음을 따서 기독교(基督敎)라 혹은 천주교(天主敎)라 불렀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어느 분야 가릴 것 없이 일부 지도자들이 그 으뜸의 자리를 이용해 무소불위(無所不爲) 힘을 휘두릅니다. 천주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행세합니다.
정치는 그 사회의 공동선을 촉진하고 특히 공동체의 이름으로 약자를 보살피는 역할을, 경제와 문화는 전인으로서 인간의 품위 있는 삶을 도모하는 역할을, 교육은 인간성과 공동체성의 증진을 돕는 역할을,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백성을 돌보고 보살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세상 모든 분야와 조직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공동체를 위한 터전이라는 성격을 지닙니다. 지도자들이 비록 현실적으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어디까지나 각 분야의 구성원과 그 공동체에 종속된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세상에 무소불위의 권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소불위의 힘은 천주님에게만 있으며, 천주님조차도 그 전능하신 힘을 당신 백성 돌보는 데에 펼치셨지 짓밟는 데 쓰지 않으셨습니다.
1독서의 탈출기는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이를 자기들의 신으로 삼은 이스라엘백성을 두고 “타락”한 백성,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질타하십니다.복음의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속을 뒤집어놓았을 것입니다.
얼핏 세리와 죄인들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그리고 둘째 아들로 비유한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듣는 이들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임을 생각하면, ‘너희들이야말로 잃은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그리고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하고 그 유산을 미리 받아 탕진한 둘째 아들이다’는 고발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천대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세리와 죄인들 앞에서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었으니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쓴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를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명령한 길을 벗어난 이스라엘과 스스로 의인이며 지도자 행세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하고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바오로만한 지도자도 흔치 않았으며, 그만한 의인도 흔치 않았으나, 그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분만이 천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분만이 천주님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수송아지를 놓고 구성원과 공동체를 현혹
하는 이들이 자기들 멋대로 단죄한 오늘의 ‘세리와 죄인’을 밥상에서조차 내쫓으려 하면서(주변화), 정작 스스로는 의인이며 지도자 행세를 하더라도 말입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신수동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