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인 필레몬서는 바오로 서간 중에서는 가장 짧은 서간입니다. 바오로 서간은 일반적으로 어느 특정 지역의 공동체를 그 수신인으로 하고 있는데, 이 서간 만큼은 필레몬이라고 하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 편지의 중심 내용은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쓸모있는 자”)라고 하는 노예를 잘 대해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입니다.
아마도 오네시모는 본래 필레몬의 노예였다가 어떤 연유로 도주하여 바오로에게 왔을 것입니다. 이제바오로는
이 서간과 함께 그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개인적 친서인 필레몬서는 다른 바오로 서간보다 사도바오로의 부드러운 인품을 보여줍니다. 필레몬에 대한 신뢰 가득한 바오로의 편지는 마지막까지 그의 신뢰가 말에 그치는 포장이 아님을 견지합니다. 바오로는 어떤 구체적지시를 내리기보다 오네시모에 대한 결정을 필레몬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바오로의 한 문장 한 문장은 오늘날 교회의 리더쉽이 지녀야 할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역사 이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입니다. 힘센 인간과 약한 인간, 가진 인간과 없는 인
간, 배운 인간과 못 배운 인간… 그 갈등은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밑바닥을 흐르는 기저의 긴장감이었고, 인류는 그갈등 앞에서 노예제도와 같은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이 쓰이기 전부터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평등에 대한 생각을 펼쳐왔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옳지 않음을 이미 비판적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노예제도에 대한 구체적 저항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은종종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는 필레몬서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도 자유인도” 없다는 갈라 3,28의 말씀은 사회
제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그 내적인 변화를 통한 실제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와 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식의 문제라는 것을 오늘날 여러 전문가들 역시 지적합니다. 바오로는 필레몬이 새로운 복음의 의식으로 오네시모를 만날 것을 권고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게 될 때,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만나려 할 때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짐을 사도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가르칩니다.
오네시모는 그 어떤 (인간이하의) “종”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형제”라는 것을 바오로는 선언합니다.
몇 년 전 상영된 어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였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의 제목 역시 필레몬서가 던지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상기시킵니다.
“종”이나 “폭도” 또는 “철거민”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이 인간임이 부정된다면 그것은 결코 복음의 시선이 아님을 사도 바오로는 천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좌빨”이나 “수구꼴통”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비록 서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법은 다를 지라도 모두 “사랑스러운 형제”임을 필레몬서는 확신합니다.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