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두 여인,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집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가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모신 마르타가 환대하고, 이미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라자로의 자매들이기에 그 집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그녀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나고가에서 토라를 들을 수 없었기에 예수님은 그녀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곳에 들렀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예수님 오시기를 학수고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녀들에게도 하느님 말씀과 사랑을 나누어 주신것입니다. 예수님의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태도는 신앙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우리의 정신입니다.
복음에서 두 여인은 똑같이 예수님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분 발치에서 들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있었고, 마르타는 예수님을 환대하려고 이것저것 바쁘게 움직입니다. 화가 난 마르타가 예수님께 자기의 편이 되어 마리아를 혼내시라고 투정부립니다. 마르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른 중요한 이유는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지, 환대받기위해서는 아닙니다. 그것을 깨달은 마리아는 제 몫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 챙기기에 바쁩니다.
신앙인들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마리아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행동입니다. 마르타처럼 성당을 관리하
고 조직하는 데만 치중하여, 정작 중요한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신앙인들 사이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듣는 것입니다. 전례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과 독서를 듣고 강론인 말씀의 설교를 들으며,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감사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의 청원과 기도가 바쳐지며, 생활에서 그말씀을 실천하는 사랑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신앙의 출발은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행위는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도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자주 혼자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메시아 사명
을 받는 올리브 동산에서도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대화하시고 결국 그분의 말씀에 따라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렇게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깊은 침묵 속에 기도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행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는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삶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대화자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행위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듣는 자세는 겸손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진위를 구별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진실한 말을 듣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며, 우리의 말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진리를 상대방에게 말하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모습 속에
진정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양해룡 사도요한 신부/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