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우리는 루카 복음 9장의 말씀을 읽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따르는 군중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계산해 보지만,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군중에게 나누어 주시니, 사람들이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더랍니다.
논리적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야기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이 해설을 시도했습니다. 그중 사회학적 해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해설은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이 당연히 각자의 먹을 음식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기 시작하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도 자신들의 것을 나누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해설은 하나의 주석적 가설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해설이 옳건 그르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복음의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얼마 되지도 않는 음식을 “나누어 주도록” 하시자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 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독식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논리는 어느덧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Winner takes all)는 멋진 문장에 포장되어 정당화됩니다. 그것은 단지 현대사회만의 논리는 아니었을 것이며, 예수 시대에도 인간의 탐욕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누기 시작하시자 사람들은 모두 풍요롭게 되었다고 오늘의 복음은 전합니다. 세상은우리에게 나누지 말라고, 나누면 빈곤해질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복음은 그 세상의 논리에 맞서 나눔은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에 성체성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건은 아닙니다. 성체성사와의 직접적인 연관은 오히려 오늘 둘째 독서로 읽은 코린토 1서 11장의 내용이거나, 아니면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특별히 오늘의 복음으로 오병이어의 사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교회의 깊은 체험을 통해 성체성사의 신비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에 나타나는 나눔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순수한 밀로 만들어진 제병이 예수님의 몸으로, 순수한 포도로 빚은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성변화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오늘의 복음은 생명을 나누시려는 예수님의 마음, 즉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통해 그 놀라운 신비가 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성체와 성혈의 신비의 중심에서 교회공동체는 생명을 나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나누어 받은 생명을 다시금 우리의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할 때 성체와 성혈의 신비는 살아있는 신비로 우리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