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진학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학교를 가겠습니다.” “안된다!” 아버지는 한마디로 제말을 자르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자상하셨지만 한번 결정을 하시면 절대 바꾸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 한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저에게 속삭이듯 이야기 하셨습니다. “마티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하렴.” 그날 밤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저의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전혀 다르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 몰래 신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아버지와 저는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저에게 반대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제는 너무 힘든 길이라 생각해서 너를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네가 선택했으니 좋은 신부님이 되어주렴.” 저는 그날 밤 주님께서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서 저를 불러주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들의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권력층이나 지식층의 인사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저 평
범하고 가진 것 없는 어부들이었는데 예수님이 먼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부르시는 분이 왜 우리를 부르시는지 헤아리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내가 지닌 것을 버리고 따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생업인 고기잡이 도구와 배와 그물을 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변명을 늘어놓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주님, 저는 능력이 안됩니다. 저
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요.” 때로는 주님의 부르심에 불만을 터뜨린 적도 적지 않았습니
다. “주님! 하필 왜 저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저는 억울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욕심과 사심의 그물을 버리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때로는 귀를 막고 저 멀리 도망쳐 버렸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주님! 부족하지만 저를 부디 불러주십시오. 어디에 어떻게 쓰시든 그저 눈물 나게 고마울 뿐입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