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늘을 만들지 않는 한 햇살은 어디에든 다녀 가고 스스로 가치를 낮추지 않는 한 우리는 소중한 사람
입니다. 아침에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허기진 배만큼이나 덜 깬 영혼에 따사로운 햇살 한 줌 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으로 펌프질하는 심장이 없다면 생명이 지속할 수 없는 것처럼 영혼을 펌프질하는 신앙이 없다면 살아 있음도 살아갈 일도 그리 많은 의미를 간직하지 못할 겁니다. 아침 햇살이 감미로운 빛깔로 감긴 눈을 뜨게 하듯이, 그렇게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추는 신앙이 있어 영혼은 기지개를 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례 받았던 그날이 이마에 새겨진 인호만큼이나 가슴 깊이 자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천상의 빛 속에 자리하신 분께서 지상 세례를 받던 그날 하느님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오늘도 세례 받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앙은 세상을 밝히는 빛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작은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이었습니
다. 반딧불이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 이유가 빛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듯 세례는 내 안에 영원히 꺼지지 않
을 빛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장막만이 짙게 드리워진 듯한 세상에, 모진 비바람마저 덤으로 주어진 것같은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밀려나고 빗겨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고 보면 내 안에 중심 잡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늘을 만들고 스스로 촛불을 꺼버리는 어리석음을 간직한 것도 우리였습니다. 하지만 세례 때 주어진 초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언제든 다시 밝혀질수 있습니다. 분명 세례를 통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혼의 초를 간직한 것은 맞습니다. 그 초는 지속적인 신앙 생활을 통해 때로는 꺼지고 밝혀지기를 반복할지 모릅니다. 우리 영혼이 주머니 없는 하얀 옷을 입고 천상문에 다다를 때까지 말입니다.
켜지지 않은 초가 그 의미를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영혼에 주어진 초가 지속적으로 켜지지 못한
다면 분명 천상 문에 이르는 길을 밝히지는 못할 겁니다.
세례 때 밝혀진 촛불이 때로는 비바람에 흔들릴 수도 있고 때로는 연약함에 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촛불을 밝히고 있는 한 우리 영혼의 항로는 길을 잃지 않을 수있고 그 항로를 따라 다른 이들도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때 세례 때 밝혀진 촛불은 단지 나만을 위한 빛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영혼의 빛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해서 오늘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밝혀진 촛불이 제대로 켜져 있는지 확인해 볼 일입니다. 아니 매 순간 그 촛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일입니다.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삶이 없듯이 우리영혼에 밝혀진 빛조차 때로는 우리 스스로 그늘 속에 잠재울 수 있고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철호 다니엘 신부 / 삼각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