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가정’ 하고 검색을 해보니까 사전에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라는 정의가
눈에 띄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더구나 혈연으로 맺어진 그 인연의 무게는 가히 짐작이 가지 않을 만큼 무겁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은 누구나가 얻으려고 노력하는 최종적 조화의 상태입니다. 가정을 부디 당신의 본업으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가정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야말로 천국에 가장 가까운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가정을 천국과 닮게 하십시오”(지나 체르미나라).
이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
러보면 우리 사회가 상당한 가정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을 때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이 부담스러워서 결혼하기를 꺼리고 있
습니다. 또 설혹 결혼한다 해도 요즘 이혼하는 부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혼이나 재혼 문제 때문에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까지 힘들어하는 현상은 이젠 더이상 새로운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인 우리 가정들은 ‘왜’ 이렇게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일까요? 문득 자신의 가정을
폭군인 헤로데 왕의 박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갓태어난 아기 예수님과 부인 마리아를 데리고 먼 나라 이집트로 피신한 요셉 성인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의 원천이 무엇일까 묵상하게 됩니다.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우리 사회에 가정의 붕괴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또 각 가정마다 맞이하는 위기
의 성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잘 듣고 잘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가정도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요셉 성인과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이 ‘성가정’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우리와 달리 거룩하고 훌륭한 분
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세 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 ‘의인들’이었기 때문에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신 주님, 부족한 저희들이 당신의 말씀에 보다 충실해서 내년에는 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아멘.
신희준 루도비코 신부/사제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