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순절의 가운데 와 있습니다. 사순절 첫날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었습니다. 재를 얹은 이유는 언젠가 재가 되어버리는 허무한 인생을 경고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순절에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일상을 멈추고 광야에 나가 인생의 진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얼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셨답니다. 우리들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빛이 납니까? 하느님 자녀의 얼굴입니까? 영원을 사는 사람들의 얼굴 맞습니까?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지금 얼굴로 괜찮겠습니까? 현대 사회는 이미지 시대랍니다. 약간의 성형을 하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안경을 바꾸고, 옷차림을 바꾸면 일도 잘되고, 스타도 되고, 대통령도 넘보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변신이 아니고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얼굴이나 외모에 대해 이런 생각은 어떨까요? 못생긴 얼굴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 못생긴 것이 내탓이 아니니 부끄러워하거나 자신 없어 할 일이 아니며, 잘 생긴 얼굴을 만드신 분도 하느님이시고 그것 또한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니 자랑하거나 남을 무시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므로 타고난 외모보다는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눈빛과 표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왜 그렇게 성형외과가 많아진 것입니까? 성형된 자기와 돈 그리고 명예를 빼면 도대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자기는 어디갔습니까?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떤 스님을 만나 함께 술을 잔뜩 마시게 되었답니다. 그 사람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짓궂은 스님은 그 사람의 머리를 홀랑 깎아버리고 가버렸답니다. 한참 뒤 술에서 깨어난 그 사람이 시원해진 자기 머리를 만지며 하는 말, “어? 중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갔지?”

예수님은 오늘 어떤 높은 산에서 진정한 변신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빛을 내는 엄청난 변신 말입니다. 그 변신은 외모의 일시적 변신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달리하는 변신입니다. 예수님은 그로써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늘 그런 ‘존재적 변신’을 추구해야 합니다. 좀 더 선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내면의 본성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늘 겉 꾸며진 모습으로 익명 속에 안주하는 삶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비록 질그릇 같은 우리지만 우리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나약하고 안일한 나를 죽여 나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쉬운 길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항상, 힘을 길러주는 힘든 길을 택해야 합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고찬근 루카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