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절망 속에서 움켜쥔 썩은 지푸라기라면 행복은 희망 속에서 마주친 향기로운 꽃”이라는 말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에 잔별처럼 내려앉습니다. 지나온 시간은 늘 말 없는 말로 채근하고 오늘은 그 말 없는 말에 죄인 아닌 죄인처럼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내일을 향하는 발걸음 멈출 수 없기에 다소곳이 두 손 모으고 슬픔의 썩은 지푸라기가 아니라 희망 속에 마주친 향기로운 꽃이 되기를 기도하는 대림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이유는 지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자기 정체성과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인간은 인간일 수 있고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삶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영역을 어느 정도 확대해 가느냐에 따라 성숙과 미성숙으로 나뉘게 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생의 출발점에서지만 끝은 같을 수 없고 태어나는 모습은 선택할 수 없지만 마지막은 선택할 수 있기에, 오늘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려는 노력만큼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찾아와 누군지 묻는 이들에게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 말합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사람’이 아니라 ‘내라고’ 외치는 소리라는 자신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모든 신앙인의 정체성을 되묻게 하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증언할 사명을 받았고 그 사명에 충실해, 종국에는 신앙의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달은 어둠 속에 자리하지만 어둠에 묻히지 않고 태양처럼 어둠을 압도하지 않지만 결코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어둠을 바라보며 어루만질 뿐입니다. 세상은 빛과 어둠,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 생존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 선과 악 그리고 그 어둠과 악을 어루만지는 사랑과 자비가 마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신앙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둠에 묻히지 않는 달처럼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묻히지 않고 세상을 어루만져야 할 삶 말입니다. 연약한 들꽃이 밤새 비바람을 맞으면서 어두운 밤을 이겨내고 흘리는 눈물이 아침이슬이듯이 우리 신앙인이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에 묻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진실한 눈물이 이세상 구원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변명이 많으면 삶은 구차해지고 발전은 느려지는 것’처럼 한 해를 보내는 우리가 구차한 자기변명보다는 진실한 반성과 참된 회개의 마음을 간직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거룩함이 천상 빛을 타고 마음 착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입맞춤하는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입니다. 어둠에 묻히지 않는 달처럼, 연약한 들꽃이 밤새 비바람을 이겨내고 흘리는 아침이슬처럼 그렇게 모진 삶에도 올 한해 하늘의 거룩함을 사랑으로 살아내려 애쓰신 형제 자매들에게, 그 옛날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영롱한 별빛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권철호 다니엘 신부┃삼각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