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양의 무리 속에 염소가 끼어 있으면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양과 염소는 분명히 다릅니다. 양도 염소도 각기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양이라면 털이 곱슬곱슬하고 통통한 게 순하다는 인상이 떠오르고, 염소라면 뿔과 수염이나 있으며 고집이 센 놈들로 기억됩니다. 양은 순해서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염소는 고집이 세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양이 타인 지향적이라면 염소는 자기중심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 청와대에 경제인들이나 사회각계 유력한 지도자들이 초청되어 식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대통령 옆에 앉거나 같은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초청된 사람 중에서도 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거나 재력이 큰 재벌들 순서입니다. 여러 개의 식탁이 있고 저 구석에 앉은 사람들은 대통령 얼굴도 잘 안 보이고 말 한번 붙여볼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도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청와대에 가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대통령보다도, 역사상 어떤 왕보다도 위대한 분이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훗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왕좌에 앉아 모든 민족 앞에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보잘것없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챙겼는지 챙기지 않았는지를 따지신다고 했습니다. 그 큰 영광에 싸인 그리스도 왕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은 커다란 업적이 아니라, 바로 보잘것없는 한 사람에게 건네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옷 한 벌이며, 병자와 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갔던 그 발걸음이라고 했습니다. 작지만 따뜻한 그 선행이 바로 위대한 그리스도 왕께서 가장 반기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보잘것없는 사람을 챙겼으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양이 되는 것이고, 챙기지 않았으면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나는 염소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스스로 양인지 염소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양이겠지 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기 안에 갇혀 이웃에게 다가가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선행들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우리 턱에는 수염이 자라고, 우리 머리 위에는 뿔이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군마(軍馬)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으며, 최후의 만찬 때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겸손한 그분이 바로 왕 중의 왕이시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깊고 솔직한 기도와 통회로써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의 염소 됨을 없애야 합니다. 즉 자기를 자랑하는 수염과 타인을 밀쳐내는 뿔을 뽑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열쇠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을 챙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먹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염소인가 봅니다. 염소는 작은 일에도 고집을 부립니다.

고찬근 루카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