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종교인들이,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삶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종종 가르치는 말과 행동이 달라서 종교인들에게 실망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1868-1948)가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남긴 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유학을 간 영국에서 우연히 성경을 읽고 많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였고, 인종차별도 심한 때였습니다. 그는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간디가 남긴 이 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지금도 유효한 말이며, 이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해당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합니다. 복음 선포는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첫째 사명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며, 동시에 증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실천하는 이웃 사랑으로 우리 삶속에서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세상의 빛이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진리를 다른 이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만약 우리 신앙인의 생활이 불성실하며 거짓말과 위선, 불의와 독선으로 가득 차있다면 결코 복음을 선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복음 선포이고 참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무엇보다 긴급한 요구와 특수한 상황에 무조건 응답하는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일시적인 요구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어떤 사람들에게라도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웃사랑은 이제 외부에서 강요되는 계명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우리를 보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여러분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며 칭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