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질문은 ‘무엇을 위해 죽을수 있느냐?’ 하는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오늘은 하느님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치신 우리나라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순교할 수 있는 신앙인인지 묻고 싶습니다.
순교는 참 어려운 결단입니다. 낭만적으로, 감성적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후미에(踏繪)’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본 에도(江戶)시대에 천주교 신자들을 배교시킬 때 사용했던 구리로 만든 성상(聖像)입니다. 그것을 밟고 지나가면 배교이고 목숨을 건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갔는지 성상의 예수님, 성모님 얼굴이 다 닳아 없어졌답니다.
순교는 어려운 일입니다. 참 신앙을 살아온 사람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벗을 위하여 목숨 바치는 사랑실천이 참 신앙입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부모를 부정하며 그 가정에서 살 수 없고, 국가이념을 부정하며 그 나라에 살 수 없듯이, 생명의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생명을 부지할 이유가 없다는 믿음이 참 신앙입니다. 이런 참 신앙만이 순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배교도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준비된 배교입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고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를 먼저 걱정하는 삶, 자기 가정의 안정과 건강을 위해서만 하느님을 찾는 삶, 재물과 명예를 지키려고 하느님도 포기하는 삶, 좋은 머리로 때로는 하느님을 이용하고 하느님과 거래하고 자신의 욕심을 합리화하는 삶, 이런 삶이 배교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은 신앙입니다.
요즈음 주일미사 참례자수가 대개 전체신자의 ⅓ 수준이랍니다. ⅔의 신자분들은 주일에 어디 가신 걸까요? 신앙인으로서 신자공동체에 속하고 그 의무를 다하는 일은 취미생활이나 친교모임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나누어 먹고, 우리도 목숨 바쳐 사랑하기를 다짐하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한다고,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한다고 목숨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매일 매일 목숨 걸고 하느님을 선택하는 치열한 여정입니다. 힘든 선택이지만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참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우리는 신앙선조들께서 목숨 바쳐 보존하여 물려주신 신앙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릅니다.’ 그 한 마디 말을 차마 못해 재산과 명예 모두 버리고, 멀쩡한 하늘 아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망나니 칼에 목을 내민 분들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녀들에게 참된 인생길을 가르쳐 주게 할 소중한 신앙인 것입니다.

고찬근 루카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