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항 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 미워하여 툭하면 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서로 폭력을 휘두르며 크게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 금붕어가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금붕어는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다른 금붕어는 이제 혼자서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그 금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금붕어의 몸이 썩기시작하면서 물 역시 악취를 풍기며 썩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 특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지내기에 그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가 삶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직장에서 동료들과, 지역에서 이웃들과 어떻게 지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기쁘고 즐거울 수도, 아니면 슬프고 버거운 인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먼저, 다른 이가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서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서로 화해하도록 타일러 주라고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타인이 나에게 잘못을 하였을 때 잘못을 하지 않은 내가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먼저 화해를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잘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 그 잘못 속에 주저앉아 체면과 고집, 불안 속에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록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능동적으로 화해와 용서를 청하는 것이 바로 형제를 얻는 방법이요, 믿는 이의 자세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활하는 우리들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크게나 작게나 실수를 범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끄러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인 것은 상처가 없는 온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가 깊고 부끄러움이 있지만 그것을 진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지만 그것을 주님의 품 안에서 이웃과 함께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인 우리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더욱 배려해
주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