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비우고 낮추어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짧은 인생을 고통 속에
마감하셨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했던 인간과의 사랑도 잠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했던 그 군중들이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믿음이 아닌 이기심과 배신으로 점철된 인간세상의 쓴맛을 보셨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그만큼 누구보다 고통이 더 크셨을 것입니다. 고통을 없애주실줄 알았던 그 예수님이 고통 속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苦海), 예수님도 바다를 없앨 수는 없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고통의 바다에 푹 잠겨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고통스런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 위
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힘들다면 고통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
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누리게 되는 기쁨을 주려하셨으나, 세상에 만연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그것이
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고통이란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고, 신토불
이 즉 제 땅에서 난 음식을 먹는 일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특별한 약을 먹는다거나, 먼 곳으로 요양 가는 것이 아니라, 병을 얻은 원인에서 병을 치유하는 방법도 함께 찾으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지요. 그렇습니다. 고통은 인생의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고통받고, 어떤 사람은 옳은 일을 하려다 고통받고, 또한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다. 고통의 이유야 어쨌든 고통받는 사람은 자기 옆에 함께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위로를 받습니다. 고통이 고통을 치유해주는 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과 함께 고통받으심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위로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위로받을 수있도록, 누구보다도 더 순수하고, 누구보다 더 억울하고,
누구보다 더 가엾은 고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죄 하나 없이, 오직 사랑 때문에, 가장 고독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고통은 위로받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우리의 고통은 견딜만한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고통 속에 우리의 고통은 녹아 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나만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삶의 포기라는 문턱까지 가야 했을 때라도, 나보다 먼저, 나보다 더 큰 고통의 길을, 나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돌아서야 합
니다. 나아가 우리도 나의 고통으로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함께하는 고통’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찬근 루카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