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통치할 때, 영국군 장성들의 모임에서 평화주의자인 간디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달린 교회를 짓는데, 당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건물이나 선전 벽보가 아니라 당신들의 삶으로 예수를 보여 주시오. 당신들이 믿는 예수가 부당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살인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당신들의 예수가 나약한 여인들을 겁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약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내 조국 인도를 그냥 놓아두시오! 당신들의 예수가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인도에 갔습니다. 수녀님은 가장 가난한 도시인 캘커타의 빈민가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수녀님은 십자가가 달린 교회도 세우지 않았고 어떠한 선전 벽보도 붙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병자들을 돌보아 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간디의 말처럼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그렇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주님! 주님!’ 하고 하느님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 많은 감동을 준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입니다. 한 수도회 신부가 아프리카의 조그만 마을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마더 데레사를 통해서,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실천은 이웃사랑입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으로 행함으로써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닐까요?

고준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