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이는 큰 신비입니다”

연중 제21주일 (제1독서:여호 24,1-2ㄱ.15-17.18ㄴㄷ / 제2독서:에페 5,21-32 /복음:요한 6,60ㄴ-69)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8-26 [제3109호, 15면]

장장 7주 동안, 주일 2독서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서간의 정점이요, 또 성경 전체에 매우 중대한 주제와 본질적 진리가 담긴 부분이며 혼인에 대한 신비와 신학적 의미가 담긴,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30-32)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망설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희생하기 싫어서 편하게 살고 싶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성(性)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의 열정을 태우고,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한 몸’을 이루고 싶은 갈망을 세상에 드러낸 큰 사건입니다. 사랑이 낳은 것이고, 자기실현 자기완성의 길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하였지만 ‘한 몸’을 이루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 몸’을 배우는데 평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어느 누가 없어지거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통합됨이 아니라 서로를 넘어 더 큰 지점을 바라보게 하는 사랑의 신비, 곧 구원의 신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두 사람을 포옹하고 때론 두 사람을 뛰어넘는 사랑의 신비를 삶에서 수도 없이 체험하면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서두름보다는 갈망하는 바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에페소서가 바로 이러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종말론적 구원의 빛으로 더욱 심화된 혼인 신학의 질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통해 나누는 그들의 인간적 사랑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으로 유비되었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가 그 원천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응답이 소명과 사명으로 인간에게 다가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적 사랑 에로스가 자신의 고유한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신적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을 뿐 아니라 또 그 완성을 갈망합니다. 사랑의 역동성입니다. 에로스의 매력은 ‘너’에게 열고 나아가는 친교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삶의 신비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참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혼인이 근본적으로 한 지점이라는 이 말씀에서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실현한 그 사랑이 곧 구원하는 사랑이면서 동시에 혼인적 사랑입니다. 부부사랑도 바로 이 구원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고 참여하는 사랑이며 혼인은 이 참여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거룩함입니다. 「가정 공동체」 13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부사랑(l’amore coniugale 인간적인 사랑)이 내재적으로 지향하는 그 완성에 도달하면 부부사랑(carità coniugale 성령 안에서 완성되는 사랑)이 되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주시면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을 부부가 실천하고 참여하는 적절하고 특수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힘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혼인을 장미가시라 하였고, 또 어떤 이는 사랑의 무덤이라고 표현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의 근원에는 이미 하느님의 선(좋음)이 내재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 남아있는 카페인이 매일 새로운 커피를 부르듯 내재해 있는 선(좋음)이 더 큰 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에 은총과 성령의 선물이 사랑의 역동성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선물로 받았고 또 완성하는 길을 재촉 받고 있습니다.

6d877ecc46167bb3c1786df1d99d7744.JPG

외스타슈 르 쉬외르의 ‘에페소에서 성 바오로의 설교’.


31-32절의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은 혼인에 대한 권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따르는 것임을 말합니다. 즉 혼인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원계획에 있었고, 한 몸을 이루기 위한 변모의 삶은 몸과 성적 결합이 성사성을 표현하는 그 신비를 살게 됩니다. 자연혼에 은총이 더하여 성사혼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서로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삶이요 서로 받아들임(순종)으로써 예속된 삶을 드러냅니다. 이 서로 받아들임(순종)의 근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삶의 모퉁이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과거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받아들임의 사랑이 이해와 배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한 사랑이지만 ‘완성’이라는 최종목적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리스도께 닿아있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사랑입니다. 처음 시작한 사랑이 완성을 지향하고 있기에 때론 기쁨으로 때론 슬픔으로 때론 분노로 신호등처럼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혼인은 처음 시작한 사랑이 은총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 갑니다. 사랑 자체가 갖는 역동성입니다. 사랑의 역동성이 온전히 그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열매 맺으며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단순한 하나의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곧 내 인격을 실현하고 발견할(「기쁨과 희망」 24항)뿐만 아니라 너를 하느님이 될 수 있게 합니다. 결국 혼인은 사랑에 의해 인간이 선택하는 탁월한 행위지만 인격으로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당신들의 친교에 초대하는 것이고, 그 초대에 부부가 응답한 것입니다.

혼인의 의미를 좀 더 넓혀 보겠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영혼의 관계를 말할 때 혼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혼인의 품위를 들어 높였습니다. 혼인의 중심이자 핵이 사랑인 까닭에 교회에서 혼인은 영혼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일치의 이미지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인간의 몸은 초자연적 질서를 가리키고, 몸의 성사성은 그리스도의 구원적 사랑의 신비, 그리고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라는 신비를 드러냅니다. ‘한 몸’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놀랍고도 아름답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선포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바로 ‘혼인신비’라 하고, 혼인의 성사성을 다루기 전에 성사 자체가 혼인의 양식을 지니고 있음을 교회 가르침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신비의 두 표징, 남편과 아내의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는 하나의 “위대한 성사”를 이루는 큰 신비입니다. 사랑은 영원토록 시작이고 시작한 그 일에 지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김혜숙 선교사는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 신학과 교황청립 안토니오대학 영성학과를 졸업하고, 교황청립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 회원이며, 대전가톨릭대 혼인과 가정대학 신학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  글: 김혜숙(막시마) 선교사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