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92호),  2018년 9월 9일(나해) 연중 제23주일


(생명의 말씀)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느껴질 때, 나의 혀는 풀리고 나의 귀는 열립니다


*글:   홍성만 미카엘 신부 |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담당


교회는 예수님으로 인해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된 귀먹은 반벙어리를 우리에게 

대면시켜 줍니다. 한순간에 귀가 열린 반벙어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경탄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풀린 혀로 터트린 일성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감사와 찬미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이 경탄과 감사와 찬미는 갓 태어난 아기의 고고한 울음소리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반벙어리에게 

있어서 말입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나의 사랑과 우정을, 나의 인격을 건넨다는 뜻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이웃의 인격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따로 불러내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페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나의 귀와 혀에 닿을 때 즉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느껴질 때 나의 혀는 풀리고 나의 귀는 

열립니다. 진정으로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배제된 채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그만큼 귀먹은 반벙어리가 됩니다. 


‘저’ 자신도 여기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습니다. 혹시 나는 요사이 귀먹은 반벙어리는 아닐까? 

어떠한 이유로든지 마음이 닫혀 이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건네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치유되어야 할 

반벙어리입니다. 그만큼 몸도 무겁고 마음도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치유되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고 섬세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반벙어리가 된 나의 

상태가 왜인지를 말입니다. 그 이유가 나의 자존심 때문인지, 이기심에 찬 상대방의 마음 때문인지를 말입니다.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그 이유를 주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끝없이 흐르는 주님의 용서와 사랑에 

마음을 다해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서히 드러납니다. 귀담아듣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사료 깊게 말을 건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오늘 제1독서는 들려줍니다.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 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 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 냇물이 흐르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주 귀먹은 반 벙어리가 되곤 합니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분이 오직 

주님이심을 알고 그때마다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당신 손가락을 나의 귓속에 넣으십니다. 그리고 침을 발라 나의 혀에 

대 십니다. 평화와 자유가 나를 감싸기 시작합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