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어느 교실, 벽에 걸린 그림들과 포스터들은 오늘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커다란 개 그림이 먼저 말했습니다.
“아, 여섯 살짜리 코흘리개 뒤를 따라다니지 않고 이 캔버스 위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언제나 깔끔하고, 골치 아픈 일도 없고, 나이를 먹거나 죽지도 않고…….”

“맞아.”

‘고양이’라는 제목이 붙은 포스터가 말을 이었습니다.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이라고들 하지만 믿지 말라고. 교정을 돌아다니는 몸집 큰 수코양이를 지켜봤는데, 아수라장 같은 도시 생활 속에서 더 빨리 늙고 더 빨리 죽더라고. 정말이지 나는 이 포스터 위의 안전한 생활이 훨씬 좋아.”

“아무렴.”

맞은편 벽의 사자도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누리는 삶과 비교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서커스단에 사는 그 불쌍한 놈들을 생각할 때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최소한 조련사의 채찍을 피해야 한다거나 우리 창살 틈으로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액자들은 이렇게 서로 자기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나자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습니다.
처음의 북받치던 감격이 사그라지자 모순된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실에는 긴 침묵,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가득 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림 개는 어린 주인과 둘이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우정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진짜 개라면 내 삶은 지저분하겠지만, 아! 얼마나 모험으로 가득 차고 생기 넘칠까?’

그림 고양이는 자신의 붙박이 생활과 근방을 배회하는 도둑고양이의 자유를 비교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위험의 연속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스릴, 동료들과의 교제, 달빛 속 구애의 황홀함을 압니다.
한편, 사자는 ‘서커스에 나간다면 얼마나 신날까?’를 그려 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기를 지켜보고,
관중들은 화염 고리를 통과할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고 조련사가 자기의 위용과 기품을 돋보이게 해 줄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갑자기 향수 어린 침묵 속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른 듯, 자기네는 결코 그리 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닐 기유메트,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발췌, 정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메마른 대지에 싹을 틔우고
사막 한가운데에 샘물이 솟게 하고 우리를 ‘진짜’로 살게 합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그림 속 인물들과 다른 삶, 생명의 향기를
이웃에게 나눠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