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제1470호), 2018년 6월24일 발행


(생활속의 복음)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1, 57-66, 80),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글: 조명연 신부 /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종종 강의 부탁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떤 주제로 강의를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하면 된다고 쉽게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솔직히 이런 강의 주제를 받으면 고민이 많이 생깁니다. 사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신 분들은 

많은 어려움과 시련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지요. 이러한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마음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을 드려도 이를 삐딱하게 듣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강의를 듣고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든데 어떻게 

봉사와 희생을 하고, 더군다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데 잘 모르는 이웃을 위해 나눔과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느냐는 등등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돈이나 명예 등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를 먼저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도 이 주님의 말씀을 드리면 ‘말도 안 된다’면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무조건 반대하고 

의혹을 품고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가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이 분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께 더 생각해봅시다”라고 말씀드리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로부터 요한 세례자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받습니다. 그때 즈카르야는 어떻게 말했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라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의혹을 품고 천사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뜻하는 요한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한의 탄생 예고는 분명히 하느님의 큰 은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았기에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루카 1,20 참조) 

벙어리가 된 즈카르야는 언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까?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 1,63)이라고 글 쓰는 

판에 썼을 때였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을 때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부정할 때에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의 뜻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불평불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삶을 통해서 이사야 예언자가 말했듯이 모든 민족들의 빛으로 굳건하게 설 수 있습니다.(이사 49,6)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고 있는 요한 세례자를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별것 없어 보입니다. 

화려한 집에 살지도 않았고 멋진 옷을 입지도 또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통치하는 

왕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을 따름이었습니다.

(사도 13,24) 

요한 세례자는 세상의 관점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르는 믿음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든 민족의 구원을 이끌었고 그 역시 

민족들의 빛으로 환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먼저 바라보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바뀔 수 있습니다. 부정보다는 긍정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나아가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