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당신의 길, 그리고 회개 / 김혜윤 수녀

연중 제3주일(요나 3,1-5.10 1코린 7,29-31 마르 1,14-20)
세상 진정한 주인은 주님이기에
그분 뜻대로 감사하며 살아야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1-21 [제3079호, 18면]

■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혹시 가야 할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와 있는 것은 아닌지, ‘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신의 길”(화답송, 시편 25,4 참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본문들입니다. 연중 제3주일 복음과 독서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본문들은 연중시기 서두에 해당하는 내용답게 “당신의 길”로 부르시는 초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지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이상의 아픔과 고통을 반복하여 만들어 내지 않게 되는지, 초조하게 불면의 밤을 지내며 질문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인들에게 주어지는 감탄스러운 해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이렇게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연중 제3주일의 본문들입니다.


■ 본문의 구성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연중시기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3년 주기(가-나-다해)로 개괄하여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며 따르는 신자들을 위해 교회는 자상하게도, 3년만 주일 미사에 참석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다면,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이신지 우리가 왜 그분의 길을 따라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구원을 위한 진리이며 참된 가치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해 연중시기에는 마르코 복음이 봉독되는데, 오늘 본문은 제목(1,1) → 세례자 요한(1,2-8) → 세례와 유혹(1,9-13)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앞서 등장한 세례자 요한과 구분되는 내용이 시작됨을 암시하기 위해 “요한이 잡힌 뒤에”(14절)라는 시간적 부사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14-15절)에서는 복음선포의 내용이 요약되고, 둘째 부분(16-20절)에서는 베드로-안드레아-야고보-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님의 구체적인 활동은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복음의 본문이 ‘제자들을 부르심’ 이전에 복음선포의 핵심을 먼저 배치한 이유가 중요하다고 보는데(14-15절), 제자들을 부르시기에 앞서 이들이 선포하고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요점정리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코가 제안하는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이를 위한 회개와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


■ 다가섬과 뭉클한 용기

이러한 연중시기의 여정은 예수님의 ‘우선적 다가섬’으로 시작됩니다. 당신께서 먼저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다가서시며 말을 건네십니다.(마르 1,17) 동일한 상황은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반복되고(마르 1,19) 제1독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나를 통해 니네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시고 당신의 뜻과 구원의 길을 전하십니다.(요나 3,2)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를 위해 인간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회개’입니다. 이 회개는 사뭇 가슴 뭉클한 도전이 되기도 하는데, “버리고”, “돌아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마르 1,18),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마르 1,20) 그분을 따라나섭니다. 니네베 사람들도 자루 옷을 입고 단식하며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요나 3,10) 모습을 보여줍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품 ‘첫 제자들을 부르심’ 부분.

■ 회개, 하느님의 것을 인식하는 사건

“버리고”, “버려두고”(복음), “돌아서고”(제1독서),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고”(제2독서)… 오늘 본문들은 이러한 동사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구원을 버림과 돌아섬,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대조가치의 선택이라는 금기와 억압의 단어들로 표현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이 질문은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원하는 것을 굳이 금기시하고 버리게끔 강요하며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등을 돌리게 하는 가혹하고 잔인한 종교인 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무던히도 경쟁해왔던, 그래서 어쩌면 무의식에서조차 스스로를 구속하고 억압해왔던 기제들을 이제는 “버리고”, “버려두고”, “돌아서서” 그것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지혜와 은총을,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어떠한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지키고 보존하며 유지하려고 해온 가치들이 사실은 본래 하느님의 것이었음(야고보와 요한의 경우 심지어 아버지까지도)을 알려주면서, 네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니 그대로 놓아두라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 그래서 소유하거나 유지하려고 더 이상 애쓰지 않고 본래의 자리에 “버려”두어도 된다고, 누구의 것도 아닌 하느님의 것이니 안심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기쁜소식인 것입니다. 이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제2독서의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1코린 7, 29-30)

특별히 하느님의 것이지만 그분의 사랑과 은총으로 네 것처럼 사용해도 된다고, 그것을 가까이 두어도 된다고 나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이제 하느님의 뜻대로, 그분의 뜻을 실현하는 데에 사용해야 함을 인식하는 것,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생명과 건강, 사회적 지위와 물질이 사실은 하느님의 것이지만 은총과 축복의 이름으로 내게 주어진 것임을 제대로 알고 감사하며 하느님께 정직하게 예의를 갖추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 곧 오늘 본문이 말하는 ‘버림’이고 ‘돌아섬’입니다.

이점은 타종교에서 제안하는 버림, 비움, 내려놓음과 명백하게 차별화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드러내 줍니다. 그리스도교의 회개(버림, 돌아섬)는 나쁜 것을 끊어버리겠다는 단순한 극기훈련이나 자기절제가 아니라 진리와 구원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전환, 하느님의 진실과 삶에 대한 궁극적 인식지평의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길

‘회개’에 해당되는 그리스어는 ‘메타노이아’로서 ‘메타’라는 전치사와 ‘노에오’(이해하다, 알다, 생각하다)라는 동사가 합성된 말입니다. 즉 회개란 ‘…을 하지 않는 것’, 혹은 ‘단순한(그래서 때로는 가혹한) 버림과 돌아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에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인식할 때 발생합니다. 내가 주인이고자 할 때,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고, 안전하다고 여겼던 상황이 불안한 위협으로 다가오며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도 불편한 배신으로 느껴져 혼란스럽게 됩니다. 중심과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고수하려면 결국 모든 것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나 아닌 다른 것들이 그렇게 내 뜻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결코 내가 될 수 없으며, 세상의 진정한 주인과 중심은 하느님이심을 바로 보게 하는 초대가 연중시기의 시작에서 오늘 성경 본문들이 알려주는 ‘당신의 길’입니다.

※ 김혜윤 수녀는 
로마교황청립성서대학원(S.S.L.)과 우르바노 대학교(S.T.D.)에서 수학한 후 광주가톨릭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에서 소임하고 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