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51호),  2017년 12월 17일(나해) 대림 3주일(자선 주일)


(생명의 말씀)   성탄, 자기 비움의 신비


*글: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었을 때,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들어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에 질투를 느꼈던지, 한 무리의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을 찾아와 따져 묻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세례를 주는 것이오?” 뭔가 설득력 있는 자기변호가 있어야 할 터인데, 


세례자 요한은 그저 겸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소리는, 그 소리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전달해 주는 내용이 없이는, 소리는 그저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풀이하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님은 창조 이전부터 계신 ‘말씀’이며,(요한 1,1 참조) 세례자 요한은 

그 말씀을 전하는 ‘소리’라고 설명합니다. 곧, 요한은 대중적 인기에 기대어 자신의 인간적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불과한 

자신을 통해 진정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베푼 세례의 근본적인 권위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기꺼이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고자 함으로써, 세례자 요한은 오히려 자신을 하느님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요한의 이런 자기 비움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 (갈라 2,20)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시성되신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철저한 자기 비움을 발견합니다.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에 

비유하시며 (성녀의 일일 묵상집 『사랑은 철 따라 열매를 맺나니에서 인용) 주님의 도구로 봉헌하셨던 성녀는, 당신의 온 삶을 

인도 캘커타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시며, 이런 자선의 삶을 통해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남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자기 비움의 참된 원형은 바로 지금 우리가 고대하는 예수님의 탄생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육화라는 이 놀라운 신비에서 드러 나는 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으로서의 영광과 권위를 모두 

비우시고 겸손되이 참 인간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성자의 거룩한 자기 비움입니다. 


소유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주님께서 거처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채우고 드높이려 는 일체의 욕심을 

내려놓고 비워내며, 그 빈자리를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 채우려는 매일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육화의 신비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