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46호), 2017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


(생명의 말씀)    주어진 현실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이 아닌가!


*글:   홍성만 미카엘 신부 |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담당


저는 얼마 전, 몇 달 동안, 자신도 모르게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병고에 시달린 나머지 어떤 신체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작고 큰 걱정에 나 자신이 끌려 다니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불면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판단한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작고 큰 걱정들을 

똑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 동안 지낸 과정을 돌아보면서 나의 의식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흘렀는지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어제오늘 만났던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더듬어 보면서, 내 마음이 열려 있었는지 

아니면 폐쇄되어 있었는지, 선을 향한 흐름이었는지 혹은 좋지 않은 마음의 흐름이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영성에서는 이것을 의식 성찰이라고 말합니다. 


주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에 갖게 되는 이 의식 성찰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질서있게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때론 쉽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결심을 하곤 하였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용서와 사랑에 맡기는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잠자리가 편해졌습니다. 불면증이 사라지며 단잠을 이루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이때 저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면증은 잠자리에 든 나에게 미래나 과거를 헤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증으로 단잠을 잔다는 것은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드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것, 그것은 현재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특별히 받은 소명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삶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에 머물며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 낼 때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의미있는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미래는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를 포용하면서, 주어진 현실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그 삶의 내용은 등불이 되어 주위를 밝혀줍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등불에 

비춰진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한 부분입니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지혜 6,16)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