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물러가라! (사순1주일 강론)
†찬미예수님
사제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치유가 내려가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들은 악마에 대해서 같이 묵상을 해 보고자 합니다.
현대인들이 악마라든지 아니면 지옥이라고 하는 단어를 가장 거부한다고 합니다. 악마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게 하는 것, 역시 악마의 장난입니다. 요즘 신학교에서는 악마에 대해서 배우지 않습니다. <악마론>이라고 하는 과목자체가 없어져버렸고, 수도원에서도 악령의 존재에 대하여 가르쳐주지 않습니다.이 만큼 교회가 악마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가고 있다고 하는 뜻일 겁니다.
사제와 수도자들 가운데서도 악마 이야기를 하면 “세상에 무슨 악마가 있어요? 그것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지 실제로 악마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쉽게 말합니다. 또 많은 교우들도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악마가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교리입니다.
저는 사제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악마와 싸워오고 있는 사제입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신자에게서 악마를 떼어주고 있습니다. 악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존입니다. 한 집안, 한 영혼, 한 본당을 송두리째 말아먹을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악마가 예수를 유혹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이 악마는 바로 루치펠을 얘기합니다. 루치펠은 그 말의 뜻이 ‘샛별’, ‘빛을 지니고 있는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루치펠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천사였으며 많은 천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장이라는 대단한 능력을 루치펠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루치펠은 교만에 가득 차서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다가 미카엘 대천사에게 쫓겨서 그 졸개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천국에 있을 때는 ‘루치펠’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국을 벗어나면서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 부하들은 ‘마귀’ 라든지 ‘악령’ 또는 ‘악신’ 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뀝니다. ‘사탄’ 이라고 하는 말뜻은 ‘거역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던져서 심판 때까지 어둠 속에 갇혀있게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루치펠이었던 그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악마와 악신들, 다시 말하면 루치펠과 그 졸개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자기들의 탓으로 악하게 되었다.> 라고 악마와 악신들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이 악마와 악신들이 사람을 죄로 유인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마습입니다. 사람을 공격하여 괴롭히고 귀찮게 하거나 심한 공포와 유혹에 빠지게 합니다. 우울하게 만들거나 헛된 얘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귀신 얘기라든지, 도깨비 얘기라든지, 이런 것들 때문에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공격하는 방법은 부마입니다. 사람에게 접신을 해서 비정상적으로 행동하게 하며 때로는 초능력이 나오게 만듭니다.마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에페소서 4장 22절에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려야 됩니다.>
죽을 때까지 마귀들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남아메리카 밀림 속에 이 세상에서 가장 독이 강한 ‘부쉬마스타’라고 하는 독사가 있습니다. 이 독사의 모습이 마치 무지개의 영롱함처럼 황홀하여 넋을 잃고 독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독사는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단 한 순간에 생명을 빼앗아간다고 합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그 덫은 황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마귀가 뿔 달린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우리 모두 경계를 하겠지만 그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앞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그냥 사탄한테 물려버립니다. 그래서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팔만대장경에 보면 마귀를 ‘구별 없이 달라붙는 버러지’ 라고 표현했습니다. 헤르만 헷세는 인간에게는 마귀가 주는 세 가지 유혹이 늘 닥쳐오는데 육체의 향락적인 욕심이 첫 번째요,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이 두 번째 유혹이요, 늘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이기심이 그 세 번째다. 라고 얘기합니다.
성서 상에 오늘 예수님이 당한 유혹은 그 세 가지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질의 욕심을 갖게 합니다. 사탄은 늘 물질을 가지고 ‘이 돌더러 빵이 되게 하여 보아라!’ 하면서 오늘 예수님 유혹했듯이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을 갖게 합니다. 손만 뻗으면 내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그게 바로 유혹입니다.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것으로 하는 것, 그것은 유혹이 아닙니다.그러기에 유혹은 이겨내기 힘이 듭니다.
두 번째로는 하느님을 시험해 보고 싶어하는 유혹을 갖습니다. ‘나한테 절만 하면 세상모든 것을 다 주겠다.’
세 번째로는 권력의 유혹을 합니다.
루가복음 4장 13절을 보면<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다음 기회가 어디였겠습니까? 바로 게쎄마니 동산이었습니다. 사탄은 더 나아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유혹을 합니다.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너무 너무 외롭고 하느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사탄은 십자가상 죽음의 순간까지도 집요하게 유혹을 합니다. 사제도 관 뚜껑이 닫힐 때에야  ‘아, 내가 이제 사제로 죽는가 보다!’ 끊임없이 버러지처럼 달려드는 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교우 중에 과천대공원의 동물사육사를 한 분 제가 아는데 그 양반이 말하기를
“신부님, 이 동물원에 수많은 파충류가 있는데 구경 오는 여자들이 제일 오래 머무는 데가 어느 우리 앞인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곳은 바로 뱀을 기르는 사육장이라고 그럽니다. 왜 여인들은 그 앞에서 떠나지 않을까? 인류를 유혹했던 그 뱀이 저주스러워서 뱀과 저항하기 위해서 그 앞에 서있는 걸까요? 아니면 여인의 첫 조상인 하와처럼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싶어서 그 앞에 서있는 걸까요? 뱀의 유혹 앞에 서있는 사람이 어찌 여인뿐이겠습니까? 모든 인간, 모든 크리스천은 언제나 유혹 앞에 노출이 되어있는 약한 존재입니다.
뉴욕에서 한 죄수에게 무려 315년이라고 하는 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쌤의 아들로 알려진 살인범, 데이비드 리코비치라고 하는 이 사람은 무려 여섯 명을 살해하고 일곱 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느 신부님이
“사람 죽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했을 때 그가 뭐라고 한마디 했느냐?
“살인을 할 때마다 내 속에서 어떤 악령이 나를 충동질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도 어떤 사람이 스물 몇 명 죽였지요? 그건 사람의 힘으로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건 악령입니다. 마귀가 타락해서 악마의 원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약에 20번, 신약에 100번 언급되어 있습니다.미국인의 60%가 마귀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그럽니다. 성서에서 사탄은 때로 천사로 가장할 수도 있고~ 아주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 현명한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고~ 계획적으로 사람을 망가뜨린다고 알려줍니다.
마르코복음 5장 1절을 보면 악마가 어떤 청년의 마음속에 들어가 절망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악마가 인간에게 입히는 피해는 크게 네 가지 입니다.
첫 번째, 정신적인 면에서 인간을 혼란시켜서 비정상적인 상태로 전락시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아이들에게 집요하게 정신적인 혼란을 시킵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서운 아이들’ 이 많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위아래가 없습니다. 신문에 안 나서 그렇지 자식한테 맞는 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두 번째, 실존적인 면, 사탄은 인간을 본래의 모습에서 타락시킵니다. 향락과 방종의 악령에 사로잡힌 탕자는 부잣집 아들에서 나중에는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같이 자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시킵니다. 실낙원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낙원에서 쫓겨나서 죽음과 고통을 당해야 되는 그 상태로 타락시킵니다. 인간의 본래 모습, 하느님이 만드시고 나셔서 ‘참 보기 좋았다!’ 는 그 모습으로부터 타락시킵니다.
세 번째는 도덕적인 면, 비윤리와 부도덕적한 쾌락에 탐닉하게 만듭니다. 동성연애, 낙태, 근친상간, 성의 타락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잡히고 대신 젊음을 회복했던 파우스트박사나 돌팡처럼 정욕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사탄의 공격입니다.
네 번째, 저속한 동물적인 본능대로 살게 만듭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합니다. 돈이나 쾌락에만 집중되어 있고~~ 자기만을 위해 쌓아 놓고 쉬고 먹고 마시고 죽기 위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국가이기주의, 하느님을 팔아서라도 내 것을 움켜쥐어야 합니다. 동물적 본성대로 살게 만드는 그게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이 네 가지의 공격루트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과 섭리에 반역하게 하고, 불순종하게 충동합니다. 회개를 만류합니다. 양심을 무디게 만들어 범죄를 촉발시킵니다. 좁은 문으로 못 들어가게 하고 넓고 편한 문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하여 한 인간을 영원히 멸망케 하는 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 사탄의 유혹에 접했을 때 단 두 마디로 물리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무언가 내가 어둠속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때로는 병마가 올 때가 있습니다.하느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몸이 아프고 어둠이 찾아옵니다.그럴 때 우리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셔야 됩니다.여러분 마음속에, 영혼 속에 마귀의 유혹이 왔을 때 남편이 술 마귀 음란마귀에게 빠졌을 때, 구마기도 해주어야 합니다.그런 어둠이 올 때마다 예수님이 하셨듯이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거라!”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사제에게만 구마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호를 받은 여러분들에게도 구마의 능력이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들은 아침에 눈뜰 때마다 신앙의 삼대구호를 외쳐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는 주님의 뜻대로 살 겁니다.
이 사순절 광야에서 어떤 유혹이 오더라도 싸워 이길 것을 하느님 앞에 오늘 우리의 믿음을 봉헌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05. 02. 13  사순 제1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