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205호), 2018년 12월 9일(다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


(생명의 말씀)  분별된 사랑의 행위는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글:   홍성만 미카엘 신부 |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담당


제가 잘 아는 성실한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복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직업은 의사이십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아내의 오빠인 처남이 처한 처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60대 중반의 비슷한 나이인 처남에게 몇 년 전부터 

치매가 시작되었고, 점점 심해져서 요사이는 그렇게도 서로 아끼던 여동생도, 매제인 자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매 주일 병원에 가서 휠체어에 태워 산책하면 서 이러저러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궁리 끝에 회장님은 마사지와 함께 손끝으로 50분 정도 처남의 등을 두드려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반응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 시원해.” 이 반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손끝에서 전해진 소통, 두 분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표징이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필리피 공동체에 보내는 바오로 사도의 애정 어린 편지에서 다음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의 행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안에 지식과 온갖 이해가 곁들여져야 합니다. 


사랑은 나의 좋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 상대를 향한 사려 깊은 이해가 녹아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향한 내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의 행동을 해야 할지 분별이 됩니다. 

이렇게 분별된 사랑의 행위는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다가올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교회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을 대면시켜 주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것으로서 주님께서 오실 길을 내 마음속에 곧게 내라고 하십니다. 거만스러운 산과 

언덕의 마음은 깎아내리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굽은 마음은 곧게 하고, 거친 길과 같은 성격은 온순하게 하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하라 하십니다.’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요즘, 나에게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소원해졌던 이웃이 누가 있는가를 뒤돌아볼 때입니다. 있다면, 그는 나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소통을 해야 하는 이웃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소통을 하지 못한 이유가 그의 거친 성격 때문이었다면, 그가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데서 부터 소통은 시작이 되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 누구와 소통하기 힘들어했던 이유가 내 안에도 엄연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통은 늘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12월을 지내면서, 특히 예수님의 성탄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소원했던 분을 기도시간에 초대하여 그를 향한 사려 깊은 이해로 

다가갑시다. 소통의 길이 열립니다. 이 소통을 통해 주님은 우리 안에서 또다시 탄생하십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