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갑식]교황의 딜레

*글: 김갑식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동아닷컴 기사입력/수정: 2018.10.05. 03:39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3일(현지 시간)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하이라이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명의 중국 주교를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250여 명의 주교가 참석한 대회 개막 미사에서 교황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온 2명의 주교가 함께했다며 환영을 요청했다. 설교는 감정에 북받친 듯 잠깐 중단됐고 신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교황이 임명하지 않은 중국인 주교의 첫 회의 참석은 중국 정부의 승리로 보여진다. 바티칸과 중국 정부는 지난달 22일 중국 교회의 주교 임명 문제에 대한 협상을 잠정 타결짓고 1951년 이후 단절된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주교 후보자를 지명하고 교황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던 공산당의 나라 중국에서 가톨릭 신자는 8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주교를 임명하는 가톨릭교회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교황이 예수의 가르침을 지키고 가르치는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은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직후부터 교황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고 7명의 주교를 독자적으로 임명했다. 자양(自養), 자전(自傳), 자치(自治), 즉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도 다스린다는 삼자(三自) 원칙이다.

▷시진핑 주석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는 올 3월 개헌 이후 중국 정부의 종교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종교시설의 국기 게양을 의무화하고 인터넷상 종교 전파 행위도 전면 금지에 나섰다. 퓰리처상 수상자로 ‘중국의 영혼들: 마오쩌둥 이후 신앙으로의 회귀’를 출간한 이언 존슨은 “종교가 전임자 시대보다 훨씬 더 회의적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교황은 중국과의 합의에 대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했다. ‘물 새는 방주’라는 비판도 있지만 2000년 이상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게 바티칸의 정치 노하우다. 주교들의 보호 아래 어쩌면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 가톨릭의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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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제1484호), 2018년 10월 7일 발행

교황청, 중국 교회의 삶 위해 한 발 양보
[해설] 교황청 - 중국 주교 임명에 관한 합의

바티칸과 중국이 주교 임명에 관해 잠정 합의한 것은 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에 있는 큰 장애물을 치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로써 중국이 독단적으로 임명한 주교는 교황청이 인정하지 않고, 교황이 임명한 주교는 중국이 배척하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1951년 단교 이래) 처음으로 모든 중국 주교가 로마 주교와 친교를 이루게 됐다”고 반겼다. 

이번 합의는 수교 협상의 대화 속도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 감은 있지만, 중국 선교의 문이 머지않아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한국 교회의 북방선교 준비 상황도 살펴보게 한다.

주교 임명권 ‘샅바 싸움’

최근 몇 년간 주교 임명권에 관한 대화는 씨름판의 ‘샅바 싸움’ 양상으로 전개됐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 간의 일치는 보편 교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교황의 주교 서임권은 사도계승뿐 아니라 주교직의 유효성 보증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다. 

중국은 이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외세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2007년 중국교회에 보낸 서한에서 “주교 서임권은 종교적 영역에 속한다. 국가 내부의 사안에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권한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유는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 

중국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 외세에 혹독하게 짓밟힌 경험이 있다. 서구 열강이 선교사들을 앞세워 중국을 침략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종교 문제에 관해 고수하는 것이 삼자(三自)운동이다. △자양(自養),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전(自傳),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고 △자치(自治), 스스로 교회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즉, 종교를 외세 영향에서 완전히 ‘해방’ 시키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자전 정신에 따라 외국인의 선교 활동을 엄격히 금한다. 관변 조직인 애국회를 통해 교회를 통제한다. 교황의 주교 서임권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자치 정신에 근거한다. 삼자운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중국 교회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교황청은 중국이 개혁개방 체제로 전환한 1980년대부터 이런 제약 속에서 대화를 해왔다. 대화 단절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로마와 결별하겠다는 엄포를 놓지 않았기에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뒀다. 교황청은 이번 합의가 “상호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발트 3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왕이 35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을 임명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후 그런 시절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면서 덧붙인 말이다. 

산 넘어 산, 과제도 많아 

교황청이 샅바를 조금 양보하고 합의문에 서명한 가장 큰 이유는 성명에서 밝혔듯 ‘중국 교회의 삶’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중국 교회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공인한 공식 교회와 정부 통제를 거부하고 교황과 일치해온 비공식 교회(지하교회) 간의 분열은 서둘러 치유해야 할 상처다. 공식 교회 신부가 지하교회의 ‘불법적’ 종교 활동을 공안 당국에 고발하고, 지하 교회는 공식 교회에서 본 고해성사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반목했다. 이런 갈등을 방치하면 중국 교회가 열교(裂敎) 내지 제2의 성공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교황은 합의 발표 직후 두 공동체의 화해를 간곡히 당부했다. 교황은 “깊고 고통스러운 긴장, 상처, 분열을 잘 알고 있다”며 “이제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함께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제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1950 ~80년대는 사제 성소 암흑기였다. 한 세대가 단절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종교의 중국화’와 사회주의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교를 계속 주문하고 있다. 교회 상징물 철거와 교회 인사 체포, 구금도 여전하다. 

파롤린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를 통해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출발하자거나, 충직한 사목자들의 고통스러웠던 발자취를 무시하거나, 깨끗이 지우자는 게 아니다”라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더 평화로운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글: 김원철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