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1474호), 2018년 7월 22일 발행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마르6, 30-34), 사랑의 삶


*글: 조명연 신부 /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대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 사람에게 특별했으면 하고, 나의 불완전한 면을 채워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기대를 채워주는 상대방은 그리 많지 않지요. 그 결과 기대가 실망이 되고, 

실망한 만큼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주로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 기대감은 내 입장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은 아닐까요?

원망에서 나오는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기대감을 잃었을 때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고 생각하는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부모 뜻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부모 뜻과 반대로 살아가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지요. 

이 역시 기대감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욕심이 담긴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내 뜻대로 행하시길 바라면서 계속 청원기도를 바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욕심이 들어가 있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우리는 충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고 허약한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께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복음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마르 6,31)고 전합니다.

너무 힘들고 지치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마르 6,34 참조) 조금도 쉬지 못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이렇게 자신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반대할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이고 나눠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는 자신이 사랑한 만큼 상대방도 사랑을 줘야 한다는 기대감이 없습니다. 

자신을 반대하고, 당신 수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그대로 인정하는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는(예레 23,4) 단 한 명도 구원의 길에서 제외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언해 말씀하신 주님의 공정이고 정의였습니다.(예레 23,5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 사랑의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에페 2,13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을 닮아서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욕심이 가득한 나의 기대감을 다른 이에게 채우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님의 모습처럼 

내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다고 말씀하십니다.(마르 6,34 참조) 바로 사랑으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기대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오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랑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 삶이 주님의 구원 사업에 기쁘게 동참하는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길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