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 아모 7,12-15 / 제2독서: 에페 1,3-14 / 복음: 마르 6,7-13)

주님께서는 순명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바라
더 잘하기 위해 경쟁하며 애쓰는 것 원치 않아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7-15 [제3103호, 15면]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이 제자들의 기억에 생생했던 말씀이라 싶고 마음 깊이 새겨진 내용이라 짐작하게 됩니다. 루카 사도는 그날 제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말씀대로’ 실행한 후에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라며 주님 앞에서 자랑스런 보고를 드린 사실을 알려주는데요.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의 신바람 나는 보고를 기대하실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의 해결만 청하고 있는 우리의 누추한 기도가 죄송해집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옛날, 아모스 예언자가 지적했던 끔찍한 죄악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아모스의 살벌한 경고를 들어야했던 당대의 끔찍한 부패지수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불공정 거래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억압과 갈취도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합니다. 나아가 1% 부자들의 무절제한 사치와 가난한 자들의 궁핍한 삶의 모습까지도 정말로 똑같이 ‘닮은 꼴’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옛날에 주님의 성심을 괴롭혔던 일들이 이렇게 고스란하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요?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세상을 쫓아 “교만을 부리고 목을 빼고 걸어 다니면서 호리는 눈짓을 하고 살랑살랑 걸으며 발찌를 잘랑거리며”(이사 3,16) 지내지 않을까 싶어 정말 두렵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당부는 한 점 한 획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날과 똑같이 우리 모두가 아모스 예언자처럼 세상을 일깨우기 원하십니다. 그날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쳐 파견하시던 그 심정으로 오늘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죄에 엉킨 세상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분의 정의와 사랑을 알려 세상을 구하도록 촉구하십니다. 당신의 제자인 우리가 당신의 명령을 가정과 일터에서 똑바로 감당하며 살아주기를 당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막중한 사명의 무게를 느끼고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또 원하십니다.

이리 살피니 오늘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를 향하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실까 싶습니다. 결코 편치 않으실 것이라 싶습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당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라”는 당부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부탁을 귓등으로 흘리고 살아가는 우리이니 말입니다.

제임스 티소의 ‘제자들을 두 명씩 파견하시다’.

문득 쉴 틈 없이 분주하신 주님의 일정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너무 바빠서 지친다’라거나 ‘너무 일이 많아서 못 견디겠다’라거나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늘 예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제 삶의 면면에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물론 사제의 빽빽한 일정은 주님의 일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그날 소화해 내야 할 일거리에 묶여 있기 일쑤입니다. 과연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는 것이 매일 착오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때문에 묻게 됩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신가요?

예수님을 위한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늘 ‘할 일의 목록’이 가득하다면 몸도 마음도 지쳐서 기쁨을 잃고 지내게 될 것입니다. 기쁘게 시작한 예수님의 일을 결국 불평과 불만으로 끝내게 될 것입니다. ‘잘하고 싶다’는 원의가 지나쳐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까지 벌어질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답답한 상황은 발생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상황은 스스로 만든 ‘기준’에서 빚어진 조바심일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와 같지 않은 상대에게 불만하고 성에 차지 않아 불평하는 일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화와의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결국 교회의 일에서 주님은 없고 그분의 일을 하면서도 그분과 동떨어져 지내는 결과가 벌어지고 맙니다.

모두 주님을 내 안에 모시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행위를 평가하거나 우리의 충실도를 평점하는 분이 아니며 오직 당신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은 소치입니다. 스스로의 목표와 자신의 기준이라는 율법주의를 숭배하는 모습입니다. 섬뜩한 신앙의 오류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복종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의 뜻에 순명하여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요한 17,13)이 당신의 뜻임을 분명히 일러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세상에서 모자라고 상대에 비해서 덜떨어지더라도 그저 주님 안에서 기뻐하기를 가장 바라신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무엇을 더 잘하기 위해서 경쟁하며 노심초사하는 것, 누구보다 앞서려고 애쓰며 힘들어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실천한다면서 기쁘고 평화롭지 못한 것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마치 내가 무엇인가를 해 드려야만 되는 종속관계로 추락시킨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핵심적 성품인 ‘거룩’한 삶으로 도약할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전교의 ‘주의사항’을 들려주십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분 닮은 거룩한 삶은, 재어 놓은 빵과 쌓아둔 옷가지 등의 세상 능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가 없다고 알려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넘어선 사랑의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고치고 세상에 생명을 선물하는 힘이 부어졌습니다.

이 주간, 자칫 세상 것들로 허술해질 수 있는 영혼의 끈을 그분께로 단단히 동여매야겠습니다. 하늘 사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에게 선물해주신 권능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당신의 주의사항을 잘 지킬 때 우리는 모두 평화의 사도로 돋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을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5-17)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