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마음 밭, 어떤 씨앗을 뿌리십니까?’

연중 제11주일(제1독서:에제 17,22-24 /제2독서:2코린 5,6-10 /복음:마르 4,26-34)

마음에 뿌린 씨앗에 따라 맺히는 열매 다를 것
미움과 증오를 품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6-17 [제3099호, 15면]

문득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버지 하느님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똑같으신 아들 예수님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솔직히 예언서를 읽으면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못된 인간은 깡그리 지옥으로 던져버릴 듯한 매서운 경고가 쏟아지다가 금세 따뜻한 희망의 말씀으로 반전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는 에제키엘을 통해서 들려주신 희망의 말씀 앞에는 “나는 그가 무시한 나의 맹세와 그가 깨뜨린 나의 계약을 그의 머리 위로 되갚겠다. 나는 그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겠다”라며 으름장을 놓고 계시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른 비유의 말씀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듣기에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새겨들어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매서운 경고를 들려주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믿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튼튼히 자라날 것이라고, 이것은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주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며 희망을 선물하고 계시니 정말로 반갑고 고마운 반전인데요.

그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똑같이 흉내 내고 싶어서 이런 반전의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이라고 짚어 어림하며 많이 행복해집니다. 당신의 말씀에 겁을 먹지 않도록,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부여잡고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다독여 주시는 주님의 손길이 곁인 듯 느껴지니까요. 틀림없이 “곧바로 사탄이 와서… 앗아가 버린다”라거나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라거나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는 강한 표현 탓에 우리가 겁을 먹지 않을까, 염려되어 다시 찬찬히 설명을 하신 것이라 싶어 감동하게 됩니다.

도대체 마음으로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행동하고 실천하는 데에 한없이 굼뜬 우리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몰래 매일매일 ‘자라난다’는 희망의 말씀을 선포해주신 것이라 싶으니까요. 아니, 그마저 성에 차지 않아서 아무도 몰래 “저절로” 자라날 테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귀띔을 주신 것이 틀림없으니 말입니다.

마르텐 반 발켄보흐의 ‘씨뿌리는 사람’ 일부.


사실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혹은 하느님이 너무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쟁이’ 같다고까지 표현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새겨 읽다 보면 그것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란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우리 부모님들처럼 우리를 훈계하신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님이 자식이 잘못될 때, 꾸중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더러는 언성을 높여 심하게 야단도 칩니다. 모두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꾸중을 해서라도, 벌을 줘서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주는 게 부모의 도리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 불쑥 솟는 기억에서 부모님의 끈끈한 사랑을 건지고 혼을 내시던 부모님 마음이 우리보다 훨씬 더 아팠다는 걸 가늠하기도 되는데요. 하느님께서도 똑같으십니다.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혼내고 으름장을 놓으시며 애가 탑니다. 너무너무 깊게 속을 앓으십니다. 결국 사랑의 성심을 숨기지 못하시고 대번에 말을 바꾸시고 맙니다. 위로와 희망과 사랑의 속내를 털어놓고 맙니다. 이것이 성경의 바닥에 깔려 있는 하느님의 속마음입니다. 그래서 매일을 말씀으로 살고 또 매 주간을 우리 안에 계신 주님 사랑에 젖어 지내겠다는 작은 다짐마저도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먼저 말씀을 건네시며 당신의 사랑을 일깨우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여 당신과 함께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살아계신 말씀의 은혜로 인해서 세상을 향하는 우리 시선이 당신처럼 따뜻하기를 기대하시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당신께서 손수 움을 틔워 주시고 용서의 여린 잎을 돋아나게 하시며 인내와 희생의 비료로 튼실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가 대단하지도 엄청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응원하십니다. 밤낮없이 건들거리며 유혹해대는 세상에서 돌아서는 용기를 선물하십니다. 내내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행복을 살아가도록 축복해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서 빳빳한 심지 하나가 박혀 있다는 걸 느끼시나요? 그 심지는 바로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이라는 부분인데요. 즉 우리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라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마음에 뿌린 씨앗의 종류에 따라 내 마음 밭에 맺힐 열매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일깨우신 것이라 싶습니다. 만약에 마음 밭에 사랑이 아닌 것을 잔뜩 파종했다면 나쁜 열매만 수두룩해질 것이라는 엄숙한 경고라고 헤아리게 되는 겁니다. 잠시 마음 안에 미움이나 증오를 품을 때, 그 씨앗이 쑥쑥 자라나 마음을 몽땅 차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당부로 듣게 됩니다. 때문에 더욱 우리의 생각도 말도 행위도 모두 “저절로” 변화시켜 주실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살아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밝혀주신 것이라 헤아리게 됩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당신의 약속을 믿으며 근심 없이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당신께서 손수 우리를 변화 시켜주시겠다는 든든한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만 하면 한 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질 축복의 도구입니다. 때문에 기쁜 소식입니다.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직접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그날에 내가 응답하리라”(호세 2,22-23)는 약속의 주인공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이루시려 세상에 보내진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주님의 어여쁜 신부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들려주시는 행복한 이야기에 마음 설레고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마음까지 속속들이 헤집어 신랑이신 예수님과 의논하고 의탁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주간, ‘나도 몰래’ 키워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드리며 더 많은 사랑의 씨를 파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신랑 예수님의 기쁨이 되시길 원하고 또 원합니다.



장재봉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