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복되십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제1독서:사도 2,1-11 /제2독서:1코린 12,3ㄷ-7.12-13 /복음:요한 20,19-23)

문을 잠그고 벌벌 떨던 한심한 제자들
성령 강림 후 세상으로 나가 복음 선포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5-20 [제3095호, 15면]

장 레스투의 ‘성령 강림’.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을 예언하며 그 문을 엽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진 오늘이 교회의 생일입니다. 오늘 독서말씀은 우리에게 성령 강림으로 인한 감격적인 교회의 탄생을 목격하도록 하는데요. 무엇보다 성령께서 교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신 첫 기적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 일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머뭅니다. 왜, 하필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면서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인간의 말을 흩어 버리신 일은 창세기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사용하던 인간들이 하느님께 도전하는 무지막지한 계획을 세웠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때 그 일이 하느님께 오랜 속앓이가 되셨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성령 강림을 통해서 부어주실 축복으로 제일 먼저 온 세상의 언어가 서로 소통하도록 섭리하신 것이라 생각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이 서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여 주님 안에서 일치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로 보듬게 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곧게 따르면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고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게 됩니다. 곧 상대방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마음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하느님의 영이며 서로의 안에 계신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도록 돕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불쑥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요한 10,4) 아, 착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뒤에서 ‘후려치며 몰아’ 가는 분이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어주시는 분이신 겁니다. 곧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이 믿음의 전부임을 알려주신 겁니다. 세상은 달라지고 사상은 변화되고 사람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하느님께서는 한결 같으십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데뷔하신 성령께서는 그날과 전혀 다르지 않게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때와 전혀 달라짐 없이 한 치도 변함없이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정녕 우리는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입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굳어지고 생각이 닫혀서 서로에게 통하지 않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요? 자신의 뜻을 고집하고 자신의 자리를, 생각을, 이익을 따지며 이웃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 왜 이렇게 흔한지요? 풀쑥! 마음이 꺾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이야기가 희망을 주는군요.

주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꼬질꼬질하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세상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한심한 꼴이 곧 우리의 모습이니까요. 그때 이미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부활 소식이 전해졌고 베드로와 요한은 새벽 댓바람부터 달려가 직접 눈으로 빈 무덤을 확인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제자들의 품새가 말이 아니지만 이 역시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습과 겹치지요. 우리도 세상살이에 겁을 먹고 떨어대기 일쑤이니까요. 세상의 가치에 쏠려 야합하며 성령을 아프게 하는 게 우리의 특기이니까요. 그런데 이 못난이들이 사도행전에서는 180도로 확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도우심 덕분입니다. 한마디로 “사람팔자는 시간문제”가 아니라 성령을 받았는지, 성령을 받지 않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솔직히 인간은 본성적으로 희생적인 사랑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믿기보다 의심하고, 따르기보다 투정하는 것이 적성인 듯 보일 지경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서 마침내 당신이 원하시는 그 사랑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려고 그분의 영께서 오셨습니다. 성령은 천하를 아우르는 초문화적·초민족적·보편적임에도 불구하고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아서’ 내 안의 기도가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이끄시는 아주 개인적인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성령에 기대어 기도를 바칩니다. 하지만 성령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맘대로 성취시켜주는 도구도 아닙니다. 이 진리는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 11,4)라던 인간의 속셈을 대번에 차단시키신 사실에서 뚜렷한데요.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여기며 계획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간섭을 원치 않는 교만이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거부하는 자만에 불과하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오순절, 단 120명에게 성령을 부으시어 세상을 변화시키신 주님께서는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의 연약함과 추함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밀물처럼 채워주기 위해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당신처럼 “이웃을 위해 내 목숨까지 내어 놓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고 또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거리를 두고 멀리서 명령만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 길을 일러주고 손을 잡고 함께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 더해서 허튼 길로 들어서는 우리를 위해서는 온몸을 던져 보호해주는 분이시라는 것…… 생각할수록 든든한 은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은 성령 강림으로 완전히 새로운 하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열고 쏟아 부어주신 성령의 은사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며 앓는 세상에 약이 되고 눈 감은 세상에 길잡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지니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송두리째 쏟아져 내린 오늘 ‘모두가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게 해 주신 성령께 기도드립니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인간의 언어를 통일시키신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는 우리 마음을 녹여 주시길, 온 세상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결집하는 은총을 주시길, 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성령인으로 변화시켜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우리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더 낮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겸손이 매일 자라나게 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분께로 영의 채널을 고정시켜 살아갈 때에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복되십니다!”라는 하늘의 칭송을 듣게 되리라 감히, 헤아립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