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75호), 2018년 5월 20일(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생명의 말씀)     성령, 사랑의 선물


*글: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예수님은 분명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지만, 그분의 제 자들이 처음부터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쁨 속에 지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뵌 사실을 알린 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요한 20,19)고 합니다.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고도 여전히 스승을 잃은 슬픔에 잠겨 “침통한 표정”(루카 24,17)으로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아직 기쁨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부활을 보고 듣고도 깨닫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과연 성령께서 오시어 그들 가운데 머무르시자, 제자들은 이제 확신에 차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 광경을 장엄하게 묘사하며, “불꽃 모양의 혀들”(사도 2,3)이 나타나 제자들 위에 

내려 앉았고, 그러자 이들은 성령에 가득 차 갖가지 언어로 하느님의 업적을 말하였다고 전합니다. 


여기에서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제자들 위에 내려앉았다’라는 신비로운 표현은 아마도,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자녀들 가운데 

머무르시며 그들을 내면으로부터 변화시키셨다’고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말씀하시듯, 성령은 곧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삼위일 체론』, 6.5.7) 하느님 사랑의 힘이 제자들을 

감싸자 그들은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신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마치 딴사람이 된 듯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이 곧 사랑 자체라는 점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7)라는 

제2독서의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곧, 성령께서 주시는 갖가지 은사와 선물은 근본적으로 자기만족이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그리고 그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교회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잘남과 의로움을 뽐내는 경연장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어 

안으며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요한 15,13) 예수님의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갑질’ 문제는, 이런 섬기는 사랑의 결핍을 드러내는 증상이라 할 터인데,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만연하지 않은지 반성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각 단체 사이에, 혹은 단체장과 단체원들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는 권한의 차이는, 인간적인 권위를 내세워 갑질을 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라,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기 위한 

사랑의 직무가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갑질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는 사랑 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성령의 교회임을 세상에 증거하는 유일한 방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