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제1463호), 2018년 5월 6일 발행


(생활 속의 복음)  부활 제6주일 (요한 15,9-17)    빠른 것이 최고는 아닙니다


*글: 조명연 신부 /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답답한 것이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습니다. 웹 페이지 한 면을 열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지난번에 유럽으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호텔 로비에서 외국인 한 분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느린 속도였지요. 저 같으면 지루하고 답답하다면서 화를 낼 것 같은데 전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여유 있게 차 한 잔을 마시고, 또 옆의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천천히 인터넷을 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이 인터넷 속도에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에 길들여 있어서일까요? 조금만 인터넷 속도가 느리면 짜증과 화가 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느리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빨라서 더 많은 것을 할 것 같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 없는 것까지 보게 되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주변의 작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가면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천천히 걸어야 볼 수 있는 경관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느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기쁨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담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빠른 것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얻을 수 있을까요? 한눈에 반한 사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랑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천천히 다가가는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화를 내고, 그 사람의 마음이 좁다면서 상대방에 대해 섣부른 판단까지 합니다. 사랑은 절대로 빠르게 얻을 수 없습니다. 빠르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집착이 아닐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오늘부터 주님 사랑 안에 머물겠다’고 다짐한다고 해서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의 노력을 통해서만이 그분의 큰 사랑 안에 머물 수가 있습니다. 그 노력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사랑의 실천을 하는 사람만이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명령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요한 사도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참조)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자신은 할 만큼 했다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사랑하지 않는 이유만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베드로 사도도 오늘 제1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사도 10,34 참조) 그런데 하느님께서도 하지 않는 모습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빠르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특히 사랑은 아주 천천히 다가가야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기쁜 소식과 함께 보고 깨달을 수 있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끔찍한 죽음까지도 선택하면서 끝까지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배반한 제자들을 혼내기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을 주십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러한 사랑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한 15,11 참조)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