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부활은 살아있는 믿음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제1독서)사도 10,34ㄱ.37ㄴ-43 (제2독서) 콜로 3,1-4 (복음) 요한 20,1-9

예수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이며 삶의 희망
사랑의 삶을 살 때 세상도 변화될 것 확신

가톨릭신문 발행일2018-04-01 [제3088호, 22면]

거룩한 밤에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초에 새 불을 댕기면서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시어 어둠을 몰아내주심에 감사드리고 기쁨에 겨워 찬미가를 부릅니다.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신 파스카의 밤을 기억하며 새 희망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 우리 눈에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신 이날, 우리는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시편 118,24 화답송 후렴)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으나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며 ‘부활 50일 축제’의 첫날을 엽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정을 나누고,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증거하는 신앙의 도구가 되자고 다짐해봅니다.

파스카 성야 예식에 참례하고 돌아오면 제 기도상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물 한 점을 모십니다. 무덤 앞에 돌문이 굴려져있고, 군데군데 초목과 들꽃이 피었으며, 돌문 위와 무덤 앞에서 병아리 세 마리가 입 벌려 노래합니다. 돌문 옆에는 ‘알렐루야’ 깃발이 꽂혀있답니다. 부활축제 기간 중에 기도할 때면 이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성경 말씀을 되새기곤 합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 ‘빈 무덤’ 사건을 전하는 복음 말씀(요한 20,1-9)에는 세 분의 증인이 등장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시몬 베드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애제자(요한)가 그들입니다. 우리가 장사를 지내면 삼우(三虞)에 묘지를 찾듯이 사흗날인 주간 첫날에 예수님 무덤에 간 마리아가 돌문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전합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서둘러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먼저 달려간 요한이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아마포와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제야 요한도 들어가 보고서야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빈 무덤 사건을 증거하고 있는 세 사람의 행적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들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도 주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갔다고 의심하면서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무덤으로 달려간 제자들 중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가 수의를 본 베드로는 분명한 입장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뒤따라 들어간 예수님의 애제자인 요한은 주변상황을 보고서야 믿습니다. 눈으로 본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면 장례식 때 수의로 사용된 아마포와 수건이 무덤에 남아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애제자인 요한만이 눈으로 보고서야 믿습니다. 빈 무덤이나 수의를 눈으로 본 것이 부활에 대한 정황은 될지언정 확고한 부활 신앙으로 마음에 새겨진 것은 아닌 줄 압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시편 16,10; 호세 6,2; 요나 2,1; 사도 2,27)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9절)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세 번씩이나 예고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공관복음(마태 28,1-8; 마르 16,1-8; 루카 24,1-12) 또한 빈 무덤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를 포함한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을 때 입구를 막았던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시신이 없으며,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흰옷을 입은 이)가 나타나 놀라지 말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립니다.

과학기술문명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합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신앙의 핵심이요 전례주년의 하이라이트인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대해 지성을 앞세워 도전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신앙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전하는 부활사화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권위자를 선호합니다. 신앙생활 속에는 하느님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있게 마련이지요.

프라 안젤리코의 ‘부활한 그리스도와 무덤앞의 여인들’.

빈 무덤 사건과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발현(마르 16,14; 마태 28,17; 루카 24,36; 사도 1,3; 1코린 15,5)을 체험한 사도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에 감격하고 죄의 용서와 해방의 기쁨을 담대히 전합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하느님의 뜻임을 증거(사도 2,14-36)했듯이,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1독서(사도 10,34; 37-43)를 통해 예수님의 공생활, 십자가의 죽음과 파스카 신비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이 하신 일에 함께 계셨고, 그분을 사흘 만에 부활시키시어 제자들 앞에 나타나게 하셨으며,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삼으시고, 그분을 믿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베드로의 이 증언은 한마디로 충실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상(無上)의 신앙 진리입니다. 제2독서(콜로 3,1-4)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오로는 세례를 통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고, 이제 천상의 것을 추구하라고 일깨워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요 삶의 희망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고 ‘그리스도인답게’ 부활의 삶을 살지 않으면 부활축제는 연중행사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마태 28,20) 그분은 성체 안에, 기도와 성사 안에, 공동체 안에, 가난한 이웃 안에, 성직자와 수도자 안에, 성전에, 말씀 안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이 그리스도와 우정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그리스도께서 앞장서 가시며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우리가 살 때 세상도 변화되리라 확신합니다.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