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강론(안동교구)


[2월 11일 연중 제6주일(세계 병자의 날]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마르 1,45)


       *글:  개운동 본당 황재모 안셀모 신부

나병은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구약성경과 오랜 유다교 전통 안에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생긴 징벌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병은 공동체나 사람들에게 격리해야 하는 부정한 병이며(레위13,45-46 참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몸은 

살아 있지만 실상은 생명이신 하느님의 은총과 단절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취급받았습니다.

(민수 12,12 참조) 


공동체에서 격리된 환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자신의 병과 생명을 돌보아야 했고, 그렇게 소외와 멸시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에서 가까이하는 것조차 금하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어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율법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율법을 제정하신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마르 2,27)


오늘 복음의 이 사건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함구령이 나오는 첫 번째 치유 기적입니다.이보다 앞서 시몬의 

장모(1,29-31)와 다른 많은 병자(1,32-34)를 치유하신 이야기가 나오지만, 치유된 이들이 함구령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치유하시고 그를 곧바로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1,43)고 복음은 

표현합니다. 그분의 명령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일어난 일에 대한 함구령이고 둘째는 그 일을 증명하기 위해 

정결 예식을 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1,44) 그런데 치유된 사람은 예수님의 함구령을 거슬러 오히려 선포자가 됩니다. 


치유된 이는 떠나가서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1,45)고 복음은 전합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알리다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선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복음 선포행위를 가리켰다고 

합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치유된 이는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한 첫 선교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체가 복음’,  선포의 내용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치유된 이가 함구령을 어겨 예수님이 더 이상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셔야 했지만, 

마르코는 그의 선포 행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반드시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입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이 있지요. 더군다나 하느님 나라의 비밀, 영원한 생명에 관한 비밀은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고 또한 선포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관계없이, 그 선포가 나에게 도움이 되건 손해가 되건 상관없이 진리는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체험과 참 믿음은 나 혼자 간직해야할 비밀이 아니라 선포해야할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참 믿음을 지녔다면 가만히 침묵하고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 세상을 

향해 선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과 선교 열정이 부족하여 외적으로 신앙을 드러내지 않고 

과묵한 삶을 산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일부 개신교 열성 신자들처럼 거리에 나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믿는 바를 삶으로 증거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치유된 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믿음을 증거 하는 일에 주저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병환자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가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은 하고자 하시면 저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십시오,”


                                                                              " Peace be with You! "